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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새해특집] 몽골을 만나다-시인이자 교육자,정치가로 살아온 유목민의 아들, 체.프릅도르찌 교수를 만났다.
 작성자 : 관리자 2011.02.17 09:43:08, 조회 1,546 

몽골의 문인(文人) 일.을지터그스는 문학을 “그 나라, 그 시대, 그 사회의 가장 높은 수준의 정신적 표현”이라고 했다.
 몽골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다른 삶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몽골사회의 정신적 표현에 귀 기울이려 한다. 새해를 맞이해 몽골사회에 한걸음 더 다가서 보려던 중에, 마침 몽골에서 시인이자 교육자, 정치가로 다양한 삶을 살아온 한 분을 소개 받았다. 물론 한 사람을 아주 잠시 만나 본 것으로 이 거창함을 해소 할 수 있을까마는 장님 코끼리 더듬듯 우문(愚問)으로 마주해 본다.
 
시인이자 몽골국립교육대학교 교수인 체.프릅도르쯔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자신을 소개한 첫마디가 “나는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말이었다.
 “나는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익숙한 한국적 표현이 연이어 떠올랐다.
침이 꼴깍 넘어 갔다. 몽골에 살면서 느껴온 ‘참 비슷하면서도 참 다른’ 대목을 또렷이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정말로 비슷한 표현에 정말 다른 생활양식을 담고 있다.

몽골의 민족적 특성을 고스란히 지닌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설을 지낸 직후라서, 우선 차강사르(설)에 어떤 덕담을 나누었는지에 대해 물어 보았다.
“몽골의 차강사르(설날)는 유목민인 몽골인들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차강사르는 좋은 것들을 기억하게 하며, 앞날을 기쁘게 마주한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때문에 거의 관습화 된 상징적인 덕담이 있지요. 먼저 상대방의 건강을 기원하고, 다음으로 가축의 평안과 풍요를 빕니다. 그리고는 재산과 지식을 많이 쌓도록 축복합니다. 저도 늘 그런 덕담을 해 왔습니다. 교민신문(KMNEWS)의 독자분들에게도 그와 같은 마음을 전하며 올 한 해도 좋은 일들 풍성하게 이루시기를 기원”한다는 따뜻한 인사말을 돌려 주었다.
 
먼저 그가 가진 시인의 마음을 두드려 본다. 몽골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노래라는 “어머니의 사랑으로“의 노랫말을 썼다. 인간의 본원적 정서를 담고 있는 단어들을 제목에 올린 그의 노랫말에서 어떤 공감을 얻게 될 지 기대된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1.
은혜로운 어머니의 돌보시는 사랑
내 살아있는 심장으로 드높이며 살겠네
내 살아있는 그 사랑으로
살아 숨쉬는 것을 사랑하며 살겠네
 
아,아 어머니의 사랑
살아있는 내 심장에 스며있다네
 
2.
덕스러운 어머니의 감동스런 사랑
내 생각과 마음에 영원히 간직하겠네
내 생각과 마음의 그 사랑으로
형제들도 사랑하며 살겠네
 
아,아 어머니의 사랑
내 생각과 마음에 스며 있다네
 
3.
인자하신 어머니의 보살피는 사랑을
내 마음 깊이 소중히 간직하겠네
마음 깊은 곳의 그 사랑으로
사람들을 노래하며 살겠네
 
아,아 어머니의 사랑
내 마음 깊은 곳에 스며 있다네
 
4.
자상하신 어머니의 둘도 없는 사랑을
내 뜨거운 심장에 귀히 여기며 살겠네
뜨거운 심장의 그 사랑으로
모든 이들을 사랑하며 살겠네
 
아,아 어머니의 사랑
내 뜨거운 심장에 스며 있다네.

 
시를 읽는 동안 고향의 어머니가 떠올랐다면, 작가가 이미 몽골의 국민적 정서를 넘어 인류보편에 접속해 있음을 확인시키는 것일 수 있다.
번역된 몇몇의 시들 가운데서 이번에는 간결하게 쓰여진 한편이 눈에 들어 왔다.
 
넓은 땅을 가진 내 조국
그러나 내 마음에 쏘옥 들어온다.

 
‘조국’(몽골)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막 힘없이 펼쳐져 때론 질식할 것 같이 느껴지는 이 드넓은 땅을 지닌 조국을 너무도 쉽게 ‘쏘옥’ 넣어 버리는 가슴을 가졌다. 그것도 애틋한 질감이 느껴지는.

몽골에 와서 살고 있는 우리는 종종 경험담을 나누곤 한다. 이때 겹쳐진 경험은 일반화되며 고정관념으로 머리에 박히기도 한다.
몽골인 스스로 느끼는 민족적 특성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유목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이 분께 물었다.

“유목민들은 속이 정말 넓습니다. 느긋하고 걱정이 별로 없지요. 가축을 기르는 일은 원래 그렇습니다. 가축의 젖을 1시간 전에 짜든 1시간 후에 짜든 크게 상관하지 않고, 초원에서 풀을 뜯기는 일도 그렇습니다. 시간에 매여 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목민들 곁에는 사장이나 무슨 대표처럼 지휘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역 군수 같은 높은 사람 이래 봐야 수십 킬로미터 뒤에나 떨어져 있을 뿐입니다. 유목민들은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들 입니다.”

시공간에 붙들림 없는 자유는 이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필요조건이다. ‘자유’가 가져다 주지 못하는 결핍은 ‘가족’으로부터 충족하며 행복을 완성한다. 때문에 이들에게 가족은 각별한 존재이다.

“가족은 모두 한 집에 모여 살기 때문에 부모, 자식, 형제들은 모든 고생과 행복을 함께 나누며 친밀한 관계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유롭고 따뜻한 영혼으로 살던 이들은 어느 날부터인가 아주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소중한 가족이 피로 숙청되고 꿈틀대는 생명의 에너지가 획일적으로 정렬되던 전체주의의 억압구조에서 근 1세기를 살아 냈다.

실패한 이상(理想)이 되어 버린 사회주의, 그 기형의 세월을 문득 떠올려 본다.
수 천 년을 민족의 본성으로 삼아 온 그’자유로운 영혼’이 가혹하게 억압당한, 집단적 고통의 시절. 과연
 
그 과정을 거치며 이 민족이 추구해온 ‘순결한 자유’는 어찌 되었을까?
“이웃 역시 가족들이 한 집에서 모여 곁에서 삽니다. 그러다가 이웃간에 서로 마음이 안 맞을 경우, 꼭 같이 있으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이사를 가버립니다.”
 
갈등의 처리방식을 엿볼 수 있다.  ‘자유란 보물처럼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누리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획일적인 억압으로부터도 순도 높은 ‘자유’를 지켜낸 것이 아니라, 이들의 민족혼에 살아 있는 자유의 생명력이 억압을 비집고 나와서 오히려 그 구조물을 통째로 감싸며 무력화 시켜버린 것일 수 있다. 
 
 ‘큰 마음으로 담아’내고 그것으로도 안되면 ‘슬쩍 비껴서는 지혜’가 몽골민족이 소수의 구성원으로 수천년의 거친 세월을 살아 낼 수 있었던 특질이 아니었는지. 그 ‘자유’에 취해 잠시 어설픈 촌평의 길을 헤맸다.

여하간 유목민의 특성에 관해 묻자, 프릅도르찌 교수는 자유로운 삶을 강조했고, 게르의 개방된 내부구조로 인해 가족간에 깊은 정과 협동심이 형성되며 가족공동체의식이 강화 된다는 점, 이웃이 멀기 때문에 독립심이 강해지고, 자연과 더불어 깊은 교감을 나누며 살아가게 된다는 점 등을 꼽았다.
그리고 정주형 사회와 비교해, 유목민은 이주생활을 하며 살기 때문에 짐을 많이 가지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물질을 축적하는데도 크게 집착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이런 유목민의 특질들은 현재 얼마나 보전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프릅도르찌교수는 “최근 100년 사이 우리사회는 도시화, 정착화되며 새로운 문화와 전통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들은 근대이후 사회주의라는 우리와 다른 경로를 거쳐 현대사회에 진입 했다. “몽골국민들은 속박에서 벗어나 부지런히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되었으며 자신도 “매우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농경사회의 정주적 삶을 살아온 우리도 급속한 자본주의적 사회발전을 거치며,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을 종종 내놓는다. 프릅도르찌교수의 시에서도 이런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게르와 아파트
 
먹든지 놀든지 아이들은
부모님 밑에서
잠자리에 들때까지
눈 앞에 다 드러난다.
모든 것을 이야기 나눈다.
왕처럼 아버지가 다스린다
계속 보면서, 해보면서 배워간다.
부부가 부대끼며 살아간다.
몇 걸음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서로서로 그리워한다.

 
 아파트는 편하다.
물건들이 많다.
짓고 난 후 움직이지 않는다.
부모님은 따로,
품의 자식들도 따로따로
서로 다른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방에 들어가 산다.

 
시인 프릅도르찌는 학자이자 교육자이다. 그 자신은 교육자로서의 삶을 인생의 주요궤적으로 보고 있다. 한때는 국회의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때도 역시 교육관련 부문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그의 연구실 한쪽 벽에는 큼지막한 몽골지도가 걸려 있었다.

그곳에는 전국각지에 흩어져 살며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에 대한 표식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가르쳐온 그는 교육자로서의 삶에 대한 자부심과 여전히 식지 않는 교육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즐겨 온 시 쓰는 일 조차 교육에 집중하는 삶을 위해 짧지 않은 시간을 접어 두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기사를 통해 소개하고 있는 대부분의 시는 최근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며 쓴 시들로써 지난해 말 새로 발간한 “내 마음속의 무지개”라는 시집에 담긴 따끈따끈한 새 작품들이다.

생존인물 중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히는 ‘고은 시인’도 여전히 대학에서 청년들과 함께 하고 있다. 고은 시인은 최근 한 강연에서 한국학생들에게“요즘 젊은 세대들을 보면 과거에 비해 진지한 성찰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는 말을 한적이 있다고 전하며, 역시 오랜 세월 몽골 교단에 젊은이들을 만나온 프릅도르찌 교수의 생각은 어떤지에 관해 물었다.
 
우선 “저는 그런 큰 인물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겸양의 말을 내어 놓은 후, 학생들은 성장과정에 있기 때문에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어, 가급적 그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나 프릅도르찌 교수 역시 느끼는 점은 비슷해 보였다.
 
“최근 우리사회도 시대의 변화에 따른 젊은이들 변화를 많이 느끼게 되는 데, 우선 매사에 쉽게 하려 든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깊게 파고드는 것, 본질을 찾는 것, 원인을 잘 파악하는 것 등이 부족해 보입니다. 어떤 일에 진중하게 대하려는 태도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지요”.

 몽골의 젊은이들이 ‘한류문화’에 호응하는 점을 고려해 바람직한 문화교류 방향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질문했다.

“사람 중에는 좋은 이와 나쁜 이가 있고 숲에는 큰 나무가 있는가 하면 작은 나무도 있다”는 몽골 속담을 소개하며 “어디에나 늘 다른 것이 공존합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며 삽니다”.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긍정적 조화를 강조했다. “몽골인과 한국인들 사이에는 비슷한 점과 다른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동질성을 더욱 높여 내며 서로 다른 점들이 갈등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노력은 서로를 잘 이해하고 협력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몽골, 한국인들의 이러한 훌륭한 협력과 친선 관계가 앞으로도 더욱 개선되며 발전되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프릅도르찌교수의 동생들이 한국을 다녀왔고, 현재 두 사위가 한국에 체류중이라며, 한국을 경험한 가족들 모두가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고 체험에 대해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프릅도르찌교수는 시골에서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나 자랐고, 몽골국립대학교 전기에너지학과를 거쳐,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경제경영학을 전공으로 박사(Ph.D.) 학위를 취득했다.  몽골교육부장관 고문, 전략기획청장 등의 역할을 맡아 보며, 교육경영분야에 대한 연구를 병행해 관련부문의 박사(Sc.D.) 학위를 취득하며 몽골에 교육경영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개척해 왔다.
교육부에서 근무하던 중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민주적인 새 헌법을 제정하는 일에 참여 했고, 교육법개정안 준비팀을 지휘했을 뿐 만 아니라, 교육분야의 여러 새로운 정책을 입안하며 몽골의 교육개혁에 앞장서 왔다.
현재는 몽골국립교육대학교 교육경영학과 학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여러가지 다른 일들을 해 왔지만 교육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거의 40년간을 일해 오며, 제가 심혈을 기울여 온 것은 우리나라 교육분야의 혁신이었습니다. 저는 몽골의 교육을 사회주의 제도에서 민주화, 시장 제도로 옮기는데 이바지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저의 자부심이기도 합니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끝으로, 덧붙일 말씀과 함께 자신이 아끼는 시를 한편 소개해 달라고 청했다.

“저를 한국교민들과 만나게 해 준 KMNEWS 신문사에 감사 드립니다. 여러분들에게 몽골을 연결시키기 위한 정보를 제공하며, 양국간의 정신적 교류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성공적인 성과로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심장’을 내 놓아 주었다.
 
심 장
 
작고 검붉은 내 심장
성실하구나 나에게
가장 성실한 것이라면
바로 네가 아니겠나?

낮 밤에 관심없이
아침 저녁 구별않고
아플 때, 건강할 때 가리지 않고
계속 펄떡 펄떡 뛰는구나

나도 모르게 잠든 뒤에도
무릎이 시큰거릴 정도로 피곤할 때에도
제 정신을 잃고 쓰러진 순간에도

한 순간도 빠짐없이
죽는 순간까지도
주인을 위해 뛰는구나.

처음부터 이 몸을 상하게 하지 않았다.
이 마음을 잃지 않았다.
교대도 없이
대신하는 이 없이
댓가도 없이 일하는구나

작고 검붉은 내 심장
성실하구나, 나에게
가장 성실한 것이라면
바로 네가 아니겠나
?
 
풀이 없으면 그것을 찾아 떠난다. 혹한이 그곳에 들이닥치기 전에 그들은 그것을 피해 또 떠난다. 늘 떠난다. 긍정의 힘으로 느긋하게, 따뜻한 심장의 박동을 벗삼아...
 
기사에 실린 프릅도르찌교수의 모든 시는 몽골국립교육대학에서 몽골어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인 민은미씨가 번역해 주었다. 본지가 프릅도르찌 교수를 만나 볼 수 있었던 것도 이분의 도움이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정성 어린 도움을 베풀어 주신 민은미님께 감사 드린다. 프릅도르찌교수 또한 본인의 시를 한국분들께 소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고 일일이 번역해 준 민은미님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번 기사를 통해 소개한 시들 외에 번역되어 있는 다른 시들을 다음호에 한차례 더 실을 예정이다.


출처 : 2011.2.7 몽골교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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