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몽골 민족의식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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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2011.01.12 11:13:07, 조회 1,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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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족의 민족의식을 검토할 경우 러시아나 중국 두 강대국에서 소수집단으로 거주하고있는 몽골족과 독립국 몽골(Mongolia)에서 거주하고 있는 몽골족 등 크게 2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양자 모두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지금까지 많이 소개되지 않은 후자의 관점에서 몽골족의 민족 의식을 검토해 보도록 한다 . -------- [편집자]
1. 어원 : 운데스텡과 야스탕 
몽골국의 민족의식을 말할 때 흔히 운데스텡.야스트노오드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운데스텡은 운데스(뿌리, 기초, 근본)와 텡(~의 사람들)의 합성어이고, 야스트노오드는 야스탕의 복수형이다.
그리고 야스탕은 야스(뼈)와 탕(~의 사람)의 합성어인데, 몽골국의 운테스텡은 [몽골]과 [카자흐]라 불리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운데스텡은 현재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민족으로 다루고 있는 범주에 대응되는 개념이다.
한편 야스탕은 운데스텡의 하위 범주이고, 운데스텡을 [민족]이라 번역하면, 이 개념을 편의상 부족 수준에 대응시켜 이해해도 좋다. 운데스텡인 카자흐족은 몽골국 서북단 바양-울기 아이막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19세기 후반에 중국 신강지역에서 알타이 산맥을 넘어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카자흐족은 몽골국에서 소수민족이지만 민족의식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의 거주지역이 지리적으로 변경에 있다는 점과 몽골정부가 지금까지 그들의 언어나 문화를 몽골족에 동화시키려는 강경정책(?)을 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는 민주화 이후 신생 카자흐스탄공화국으로 이주한 몽골국 카자흐족이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사정으로 다시 몽골로 귀환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과, 일반 몽골인들이 카자흐족의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별 관심을 표명하지 않고 있는 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몽골국에서 출판된 민족학 서적에서는 다음과 같은 16개 집단이 야스탕으로서 언급되어 있다.즉< 할하, 두르부드, 우울드, 토르고오드, 바야드, 알타이 우량하이, 자흐친, 먕가드, 부리야트, 바르가, 우젬친, 다리강가, 호통, 토바 차아탕(차아탕), 토바 말친(토바), 함니강 > 등이다. 이들 야스탕의 형성과정은 역사적으로 각각 다르고 복잡늡玖? 그 가운데는 알타이 우량하이나 차아탕과 같이 그 내력이 명확하지 않은 야스탕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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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Arial" lang=EN-US>1125</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Arial">년<SPAN lang=EN-US> 12</SPAN>월 금나라 군사는 동과 서로 나뉘어 동아시아 최대의 인구와 국력을 가진 송나라의 수도 개봉(카이펑)을 향하여 대거 남하하였다<SPAN lang=EN-US>. </SPAN>금나라의 동군은 연경을 거쳐 내려와 화북의 대평원을 가로질러 남으로 질주하고<SPAN lang=EN-US>, </SPAN>서군은 태행산맥과 여양산맥 사이의 분수협곡을 빠져 나와 개봉으로 향하였다<SPAN lang=EN-US>. </SPAN>화북평원의 군사거점이었던 하간<SPAN lang=EN-US>, </SPAN>중산의 수비군과 태원의 수비군은 농성으로 저항하였으나 금나라 군사가 곧바로 개봉으로 향하자 휘종은 남쪽으로 달아났다<SPAN lang=EN-US>. </SPAN>다음달<SPAN lang=EN-US>, </SPAN>금나라 군사가 개봉을 포위하자 송나라가 태원<SPAN lang=EN-US>, </SPAN>하간<SPAN lang=EN-US>, </SPAN>중산<SPAN lang=EN-US> 3</SPAN>진의 할양을 약속하여 금나라 병사들은 퇴각하였다. 금나라 군사는 그해 가을 다시 개봉을 포위한 후 휘종과 흠종 그리고<SPAN lang=EN-US> 1200</SPAN>여명의 귀족을 북쪽으로 연행하였으며 송나라 재상 장방창을 황제로 하는 괴뢰정권 초나라를 세운 후 북방으로 돌아갔다<SPAN lang=EN-US>. </SPAN>그러나 금나라 군사력이 떠나자 괴뢰정권은 휘종황제의<SPAN lang=EN-US> 8</SPAN>번째 아들인 강왕에게 자발적으로 정권을 내주었다<SPAN lang=EN-US>. </SPAN>그러자 금나라는 다시 남진하였으며 강왕은 양자강을 건너 항주를 임시수도로 정하였다<SPAN lang=EN-US>. </SPAN>한편 화북에서 화중에 걸쳐 여러 자위집단이 이합집산하였으나 금나라 기마대에게 거의 전멸 당하였고, 패잔병들은 삼림이 있던 태행산으로 숨어들어 게릴라전을 펼쳤다. 이마저도 금나라 군사에 눌리면서 회하 이북의 넓은 들판은 금나라 영토로 변했다<SPAN lang=EN-US>.<BR><BR><?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SPAN></SPAN></P>
<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Arial">그러나 송나라는 패잔 정규군을 흡수한 지방군벌의 지역자위대 덕분에 강남에서 국가(남송)를 재정비할 수 있었다. 지방군벌들에 의해 회하에서 사천의 대산관까지 국경선이 확립되었다<SPAN lang=EN-US>. </SPAN>동쪽에서 차례로 회남동부 한세충의 한가군<SPAN lang=EN-US>, </SPAN>회남서부 강동에 기반을 둔 장준의 장가군<SPAN lang=EN-US>, </SPAN>호북 악비의 악가군<SPAN lang=EN-US>, </SPAN>사천 오개 오린의 오가군이 있었다<SPAN lang=EN-US>. </SPAN>민중들은 남송 정권보다 강건한 규율과 왕성한 전투심을 과시한 군벌 악비를 더 따랐다<SPAN lang=EN-US>. </SPAN>악비는 화북의 농민출신이었으나 의용군에 몸을 던져 불과<SPAN lang=EN-US> 6, 7</SPAN>년 사이에 호북지방의 대군벌로 자랐다<SPAN lang=EN-US>. <BR><BR></SPAN></SPAN></P>
<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Arial"><SPAN lang=EN-US>남송정권은 지역자위대를 이용하여 </SPAN>기반을 확립하였다. 남송정권은 '악비 중심의 군사집단이 화북 땅을 회복하면 악가군이 악가왕조로 변신할 수도 있고, 반대로 전쟁이 길어지거나 패하면 남송정권이 몰락할 수도 있다'라고 예상하였다. 그리하여 재상 진회는 악비를 체포하여 투옥한 후, 금나라와 화의를 체결하였다.<SPAN lang=EN-US> 이 </SPAN>화의는<SPAN lang=EN-US> 1234</SPAN>년까지 거의<SPAN lang=EN-US> 100</SPAN>년간 송<SPAN lang=EN-US>-</SPAN>금 관계의 기본을 결정하였다<SPAN lang=EN-US>. </SPAN></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Arial">화의는 동쪽의 회하에서 서쪽의 대산관까지의 선을 국경으로 확정하였다<SPAN lang=EN-US>. </SPAN>요나라는 중국 땅의 연운<SPAN lang=EN-US> 16</SPAN>주를 차지했었지만, 이 화의로 인하여 금나라는 송의 수도였던 개봉을 포함한 화북전체를 취하였다<SPAN lang=EN-US>. </SPAN>송이 요나라를 형으로 삼은 것에 비하여 금나라에게는 신하의 예를 취하였으며<SPAN lang=EN-US>, 또한 </SPAN>매년 세폐로서 은과<SPAN lang=EN-US> </SPAN>비단 각<SPAN lang=EN-US> 25</SPAN>만냥을 바쳤다<SPAN lang=EN-US>. </SPAN>남송은 군사력으로는 상대적으로 약하였으나, 막대한 금력과 유화정책으로 외세의 위협을 무마하면서 중원의 실지회복을 노렸다<SPAN lang=EN-US>.<BR><BR><o:p></o:p></SPAN></SPAN></P>
<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Arial">이리하여 중국지역은 서로 다른 민족이 지배하는 최소한 너댓개의 나라들로 나뉘어졌다<SPAN lang=EN-US>. </SPAN>크게는 여진의 금이 차지한 중원, <SPAN lang=EN-US>한족인 </SPAN>송이 밀려 내려간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contacts" /><st1:PersonName w:st="on">남송이</st1:PersonName> 들어선 중원 이남, 탕구트족이 차지한 만주 일부와<SPAN lang=EN-US> </SPAN>중국 서북부의 감숙<SPAN lang=EN-US>(</SPAN>甘肅<SPAN lang=EN-US>)과</SPAN> 청해 일대였다<SPAN lang=EN-US>. </SPAN>그외 사천성 외곽의 광대한 티베트 및 운남지역 역시 정치<SPAN lang=EN-US>, </SPAN>외교적 권한을 지닌 독립국가였다<SPAN lang=EN-US>. </SPAN></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감숙<SPAN lang=EN-US> </SPAN>등지를 중심으로 일어난 티베트어족인 탕구트족<SPAN lang=EN-US>(</SPAN>黨項族<SPAN lang=EN-US>)</SPAN>은 서하<SPAN lang=EN-US>(</SPAN>西夏<SPAN lang=EN-US>, 1038~1227</SPAN>년<SPAN lang=EN-US>)</SPAN>를 건립하였고<SPAN lang=EN-US>, </SPAN>요, 금<SPAN lang=EN-US>, </SPAN>송과 경쟁하는 세력판도를 형성했다<SPAN lang=EN-US>. </SPAN>한족왕조인 송은 이들 유목민족에게 조공을 바치거나 또는 이들간의 분쟁을 조장하여 현상유지를 도모했다<SPAN lang=EN-US>. 이슬람 세계도 여러 제국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유럽에서는 봉건영주들이 득세하여 국력이 분산되고 있었다<SPAN lang=EN-US>. <BR><BR></SPAN><o:p></o:p></SPAN></SPAN></P>
<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징기즈칸이 출생했을 때<SPAN lang=EN-US>, </SPAN>몽골족은 사회적 대전환을 경험하고 있었다<SPAN lang=EN-US>. </SPAN>천막생활을 하며 계절적으로 늘 이동하는 이들은 원래 씨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다<SPAN lang=EN-US>, </SPAN>몽골족은 가족을 기본단위로 씨족을 그리고 다시 씨족들이 뭉쳐 부족을 형성하여 분권적이며 인적 유대를 강조하는 사회체계를 형성하고 있었는데<SPAN lang=EN-US>, </SPAN>거기에 중국식 관료제를 도입하여 보다 중앙집권적 사회로 전환하고 있었다<SPAN lang=EN-US>.</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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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요가 여진에게 멸망하기 직전에 황족이던 야율대석<SPAN lang=EN-US>(</SPAN>耶律大石<SPAN lang=EN-US>, </SPAN>재위<SPAN lang=EN-US> 1124~1143</SPAN>년<SPAN lang=EN-US>)이</SPAN> 몇몇 동료들과 함께 초원지역으로 도망하여 오늘날 추구착 근처의 타르바가타이에 있는 이밀에 근거를 두고<SPAN lang=EN-US>, </SPAN>돌궐계 국가인 카라한조<SPAN lang=EN-US>(Karakhanid dynasty)</SPAN>의 도읍인 발라사군을 탈취하여 서요<SPAN lang=EN-US>(</SPAN>西遼<SPAN lang=EN-US>, </SPAN>카라키타이<SPAN lang=EN-US>)</SPAN>라는 제국을 수립하고<SPAN lang=EN-US>, </SPAN>구르칸<SPAN lang=EN-US>(</SPAN>四海의 군주라는 의미<SPAN lang=EN-US>)</SPAN>이라는 왕명을 사용하였다<SPAN lang=EN-US>. </SPAN>구르칸은 그의 통치 기간 동안에 주변 여러 지역을 침공하여 제국의 세력을 트랜스옥시아나까지 확장하였다<SPAN lang=EN-US>. '트랜스옥시아나(마베레나흐르<SPAN lang=EN-US>)'는</SPAN> <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Arial">중앙아시아의 아무다르야강과 시르다르야강 사이의 지역을 말하는데, 반정착<SPAN lang=EN-US> </SPAN>반유목의 투르크 종족들이 <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Arial">기원전<SPAN lang=EN-US> 2</SPAN>세기에 </SPAN>이 지역에 들어왔다. 1212년에<SPAN lang=EN-US> </SPAN></SPAN></SPAN>서요제국은<SPAN lang=EN-US> </SPAN>징기즈칸에 의하여 서쪽으로 밀려가는 나이만족의 쿠츨루크에게 패하였고<SPAN lang=EN-US>, </SPAN>호라즘의 무하마드 칸에게도 제국의 큰 부분을 빼앗김으로써 종말을 고하였다<SPAN lang=EN-US>. </SPAN></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거란은 역사속에서 큰 흔적을 남겼는데<SPAN lang=EN-US>, 거란(키타이)이</SPAN> 중국이라고 서양에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SPAN lang=EN-US>. 즉 영어로 </SPAN>중국은 캐세이<SPAN lang=EN-US>(Cathay)</SPAN>이고<SPAN lang=EN-US>, </SPAN>러시아어로는 키타이<SPAN lang=EN-US>(Kitay)이</SPAN>다<SPAN lang=EN-US>. <BR><BR><?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SPAN></SPAN></P>
<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SPAN lang=EN-US>762</SPAN>년에 위그르의 카간 베키가 마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SPAN lang=EN-US> </SPAN>마니교는 위그르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SPAN lang=EN-US>. <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마니교는<SPAN lang=EN-US> 3</SPAN>세기에<SPAN lang=EN-US> '</SPAN>빛의 사도<SPAN lang=EN-US>' </SPAN>또는 최고의<SPAN lang=EN-US> '</SPAN>빛을 비추는 자<SPAN lang=EN-US>'</SPAN>로 알려진 예언자 마니<SPAN lang=EN-US>(Mani : 210?~276</SPAN>년<SPAN lang=EN-US>)</SPAN>가 페르시아에서 창시한 이원론적 종교운동에서 시작되었다<SPAN lang=EN-US>. </SPAN>마니의 활동 초기에는 그리스도교<SPAN lang=EN-US>, </SPAN>조로아스터교<SPAN lang=EN-US>, </SPAN>불교의 여러 요소가 가미된 이단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SPAN lang=EN-US>, 마니교는 </SPAN>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SPAN lang=EN-US>[</SPAN><SPAN 절 onmouseover=?tooltip_on(??,?배 ㉠절 ㉡삼가고 공경하다 ㉢벼슬 ㉣절하다 ㉤받다 ㉥굽히다?)? 배, 주다 : onmouseout=tooltip_off()>拜</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불 ㉠불 ㉡화 ㉢화성 ㉣급하다 ㉤불사르다?)? onmouseover=?tooltip_on(??,?화 화,>火</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onmouseover=?tooltip_on(??,?교 가르칠 교, ㉠가르치다 ㉡종교 ㉢가르침 ㉣교령?)?>敎</SPAN><SPAN lang=EN-US>]</SPAN>에서 파생되었고<SPAN lang=EN-US> </SPAN>교리가 일관되었기에<SPAN lang=EN-US>, 그 </SPAN>체계가 확실히 잡혀가면서 고유한 종교로 자리잡았다<SPAN lang=EN-US>. </SPAN></SPAN></SPAN>위그르는 유목민족 최초로 집단적으로 정착민의 종교인 마니교를 받아들이면서 정착화가 더욱 가속화되었다.<SPAN lang=EN-US> </SPAN>위그르인들은 정착을 위해 스텝의 평야지대로 이동하였고<SPAN lang=EN-US>, </SPAN>중앙 아시아 유목민족 최초로 성곽도시를 건설하였다<SPAN lang=EN-US>. </SPAN>그러나 이러한 과정으로 인하여 위그르제국은 유목민족의 특성을 잃어버렸고<SPAN lang=EN-US> </SPAN>군사적으로도 활력이 약해져 <SPAN lang=EN-US> 840</SPAN>년에 망하고 말았다<SPAN lang=EN-US>. </SPAN>위그르를 멸망시킨 키르기즈는 강력한 부족 연맹이었으나<SPAN lang=EN-US> </SPAN>제국을 건설하지는 못하였다<SPAN lang=EN-US>. </SPAN>그들은 유목민족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였으므로<SPAN lang=EN-US> </SPAN>도시와 국가를 건설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SPAN lang=EN-US>. </SPAN>마니교는 도시화와 정착화를 촉진시켰고 그리고<SPAN lang=EN-US> </SPAN>소그드인을 통하여 문자를 중앙아시아로 전파시켰다<SPAN lang=EN-US>. </SPAN>위그르인들은 스텝민족 최초로 문학을 발전시켰다<SPAN lang=EN-US>. </SPAN>패망한 위그르는 그 후 다양한 씨족 연맹으로 분열되어 소왕국들을 이루면서 명맥을 유지하였다<SPAN lang=EN-US>.<BR><BR><o:p></o:p></SPAN></SPAN></P><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Arial">
<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Arial">북중국을 장악한 반<SPAN lang=EN-US>(</SPAN>半<SPAN lang=EN-US>)</SPAN>유목국가 거란<SPAN lang=EN-US>(</SPAN>키타이<SPAN lang=EN-US>)</SPAN>은 오랫동안 여진족을 지배하였다<SPAN lang=EN-US>. </SPAN>원래 초원에서 일어난 거란의 황족<SPAN lang=EN-US>, </SPAN>귀족들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소흥안령에서 장백산맥의 삼림지대에 사는 여진족을 지배하면서 지역 특산물인 사금과 사냥용 매의 헌납을 강요하였고<SPAN lang=EN-US>, </SPAN>여진 미녀들을 기혼 미혼 구별 없이 잡아가 왕의 후궁으로 삼았다<SPAN lang=EN-US>. </SPAN>그러면서도 거란은 평소에<SPAN lang=EN-US> “</SPAN>여진인은 산산히 흩어져 모이는 일이 없다<SPAN lang=EN-US>. </SPAN>그러나 만일 그들이 모인다면 대적할 수 없다<SPAN lang=EN-US>”며</SPAN> 여진족을 경계하였다<SPAN lang=EN-US>. <BR><BR><o:p></o:p></SPAN></SPAN></P>
<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Arial"><SPAN lang=EN-US>그러다가 </SPAN></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하얼빈<SPAN lang=EN-US> </SPAN>남동쪽의 안추후수이<SPAN lang=EN-US>[</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누를 ⓐ막다(알)?)? ㉤살피다 ㉣생각하다 ㉢당기다 ㉡어루어만지다 ㉠누르다 알, 안, onmouseover=?tooltip_on(??,?안 막을>按</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처남?)? ㉪자손 ㉩게우다 놓다 ㉨내어 ㉧드러내다 ㉦뛰어나다 ㉥떠나다 ㉤나가다 ㉣시집가다 ㉢태어나다 ㉡낳다 ㉠나다 출, 날 onmouseover=?tooltip_on(??,?출>出</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범?)? 범 onmouseover=?tooltip_on(??,?호 호,>虎</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onmouseover=?tooltip_on(??,?수 물 수, ㉠물 ㉡물과 관련된 일 ㉢수성(태양에 가장 가까운 별)?)?>水</SPAN><SPAN lang=EN-US>] </SPAN>부근 아청<SPAN lang=EN-US>[</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옥)?)? ⓐ호칭 ㉦의지하다 ㉥아름답다 ㉤기슭 ㉣모퉁이 ㉢대답하는 ㉡물가 ㉠언덕 호칭 아, onmouseover=?tooltip_on(??,?아 언덕 옥, 소리>阿</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onmouseover=?tooltip_on(??,?성 성, 재 ㉠재 쌓다?)? ㉢성을 ㉡성>城</SPAN><SPAN lang=EN-US>]</SPAN>의 완안부<SPAN lang=EN-US>(</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끝내다?)? 완결짓다 ㉢일을 ㉡완전히 ㉠완전하다 완, 완전할 onmouseover=?tooltip_on(??,?완 하다>完</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안, onmouseover=?tooltip_on(??,?안 ㉧색채?)? ㉦빛 ㉥이마 ㉤체면 ㉣면목 ㉢표정 ㉡안면 ㉠얼굴 얼굴>顔</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나눌 ㉠나누다 ㉡떼 ㉢분류 ㉣거느리다 ㉤언덕(구릉)?)? onmouseover=?tooltip_on(??,?부 부,>部</SPAN><SPAN lang=EN-US>)</SPAN>에서 세력을 키운 여진족 추장 아구다<SPAN lang=EN-US>[</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옥)?)? ⓐ호칭 ㉦의지하다 ㉥아름답다 ㉤기슭 ㉣모퉁이 ㉢대답하는 ㉡물가 ㉠언덕 호칭 아, onmouseover=?tooltip_on(??,?아 언덕 옥, 소리>阿</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인품?)? ㉢몸 중추 ㉡사물의 ㉠뼈 골, 뼈 onmouseover=?tooltip_on(??,?골>骨</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칠 ㉠치다 접두사?)? 쓰이는 앞에 ㉣동사 ㉢다스 ㉡타 타, onmouseover=?tooltip_on(??,?타>打</SPAN><SPAN lang=EN-US>]</SPAN>가 1114년에 </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Arial">반기를 들고 거란의 전방 지배거점인 영강주를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였다<SPAN lang=EN-US>. </SPAN>아구다는 <SPAN lang=EN-US>1115</SPAN>년 하얼빈 동남쪽<SPAN lang=EN-US> 50 km </SPAN>지점에 위치한 상경회령부</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SPAN : onmouseout=tooltip_off() 타다?)? ㉭탈것을 ㉬오르다 ㉫진헌하다 ㉪드리다 ㉩올리다 ㉨높다 한가지 ㉧사성의 ㉦군주 ㉥임금 ㉤이전 ㉣옛날 ㉡앞 ㉠위 상, 위 onmouseover=?tooltip_on(??,?상 ㉢첫째>上</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언덕 (원)?)? ⓐ언덕(原) ㉥가지런하다 ㉤근심하다 ㉣높다 만배) 단위(兆(조)의 ㉡수의 ㉠서울 서울 ㉢크다 원, onmouseover=?tooltip_on(??,?경 경,>京</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기회?)? ㉤회계 ㉣맞다 ㉢깨닫다 ㉡모으다 ㉠모이다 회, 모일 onmouseover=?tooltip_on(??,?회>會</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하다 onmouseover=?tooltip_on(??,?녕 편안할 녕(영), ㉠편안하다 ㉡편안히 ㉣문안하다 ㉤친정가다 ㉥차라리 ㉦어찌?)?>寧</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onmouseover=?tooltip_on(??,?부 부, ㉣창자?)? ㉢곳집 ㉡관청 ㉠마을, 고을 마을>府</SPAN><SPAN lang=EN-US>)</SPAN></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Arial">에 금나라를 세우고 거란 토벌군을 크게 격파하였다<SPAN lang=EN-US>. 1120</SPAN>년에는 거란<SPAN lang=EN-US>(</SPAN>요제국<SPAN lang=EN-US>)</SPAN>의 수도 상경임횡부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왕</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위에 올라 국호를 금<SPAN lang=EN-US>(</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onmouseover=?tooltip_on(??,?금 쇠 금, 성 김, ㉠쇠 ㉡금 ㉢돈, 화폐 ㉣누른 ㉤귀하다 ⓐ성씨 (김)?)? 빛>金</SPAN><SPAN lang=EN-US>)</SPAN>이라 하였으니<SPAN lang=EN-US>, </SPAN>그가 곧 금나라 태조<SPAN lang=EN-US>(</SPAN>재위<SPAN lang=EN-US> 1115</SPAN></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바탕">∼</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lang=EN-US>1123</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년<SPAN lang=EN-US>)</SPAN>다<SPAN lang=EN-US>. </SPAN>태조는 요군을 격파하며 영토를 넓혀 나갔고<SPAN lang=EN-US>, </SPAN>그 해 송<SPAN lang=EN-US>(</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송나라?)? 송나라 onmouseover=?tooltip_on(??,?송 송,>宋</SPAN><SPAN lang=EN-US>)</SPAN>나라와 동맹을 맺고 요를 협격하여 만주지역으로부터 요의 세력을 몰아내는데 성공하였다<SPAN lang=EN-US>. </SPAN>이어 태조는 산시성<SPAN lang=EN-US>[</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절?)? ㉢능 ㉡산신 ㉠산 산, 산 onmouseover=?tooltip_on(??,?산>山</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서양?)? ㉠서녘 서녘 onmouseover=?tooltip_on(??,?서 서,>西</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onmouseover=?tooltip_on(??,?성 성, (생)?)? ⓒ재앙 (생) ⓑ허물 ⓐ덜다 ㉥대궐 ㉤마을 ㉣관청 ㉢명심하다 ㉡깨닫다 ㉠살피다 생, 덜 살필>省</SPAN><SPAN lang=EN-US>]</SPAN>의 다퉁<SPAN lang=EN-US>[</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onmouseover=?tooltip_on(??,?대 큰 대, ㉠크다 ㉡대강 ㉢거칠다 ㉣지나다 ㉤낫다?)?>大</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하다 같은?)? 바와 ㉪전한 ㉩그 ㉨무리 ㉧한가지 ㉦회동하다 ㉥모이다 ㉤화합하다 ㉣균일하게 ㉢합치다 ㉠같다 같을 ㉡같이 onmouseover=?tooltip_on(??,?동 동,>同</SPAN><SPAN lang=EN-US>], </SPAN>허베이성<SPAN lang=EN-US>[</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물 ㉤은하?)? ㉣황하(黃河) ㉢운하 ㉡내 하, 강물 onmouseover=?tooltip_on(??,?하>河</SPAN><SPAN 배, : onmouseout=tooltip_off() (배)?)? ⓒ달아나다 (배) ⓑ저버리다 ⓐ패하다 가다 ㉡북쪽으로 ㉠북녘 패할 북, 북녘 onmouseover=?tooltip_on(??,?북>北</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onmouseover=?tooltip_on(??,?성 성, (생)?)? ⓒ재앙 (생) ⓑ허물 ⓐ덜다 ㉥대궐 ㉤마을 ㉣관청 ㉢명심하다 ㉡깨닫다 ㉠살피다 생, 덜 살필>省</SPAN><SPAN lang=EN-US>]</SPAN>의 연경<SPAN lang=EN-US>(</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편안하다?)? ㉣잔치하다 하나) 제후국의 ㉢연나라(周나라의 ㉡잔치 ㉠제비 연, 제비 onmouseover=?tooltip_on(??,?연>燕</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언덕 (원)?)? ⓐ언덕(原) ㉥가지런하다 ㉤근심하다 ㉣높다 만배) 단위(兆(조)의 ㉡수의 ㉠서울 서울 ㉢크다 원, onmouseover=?tooltip_on(??,?경 경,>京</SPAN><SPAN lang=EN-US>: </SPAN>베이징<SPAN lang=EN-US>)</SPAN>으로 진출하였다<SPAN lang=EN-US>. </SPAN>제<SPAN lang=EN-US>2</SPAN>대 태종<SPAN lang=EN-US>(</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첫째 ㉠크다 ㉥콩?)? ㉤심히 ㉣처음 ㉡심하다 태, 클 onmouseover=?tooltip_on(??,?태>재위<SPAN lang=EN-US> 1123</SPAN></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바탕">∼</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lang=EN-US>1135</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년<SPAN lang=EN-US>)</SPAN>은 <SPAN lang=EN-US>1125</SPAN>년에 요를 멸망시키고 서하<SPAN lang=EN-US>(</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서양?)? ㉠서녘 서녘 onmouseover=?tooltip_on(??,?서 서,>西</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하, onmouseover=?tooltip_on(??,?하 ㉣회초리?)? 왕조) 고대 세운 ㉢하나라(禹王이 ㉡중국 ㉠여름 여름>夏</SPAN><SPAN lang=EN-US>) ·</SPAN>고려<SPAN lang=EN-US>(</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자리?)? ㉥높은 ㉤높은 ㉣뽐내다 ㉢뛰어나다 ㉡비싸다 ㉠높다 고, 높을 onmouseover=?tooltip_on(??,?고 곳>高</SPAN><SPAN : onmouseout=tooltip_off() 수효?)? ㉪수, ㉩짝 ㉨마룻대 ㉧나라 ㉦붙다(부착) ㉥매다 ㉤빛나다 ㉣짝짓다 ㉢맑다 ㉠곱다 고울 ㉡아름답다 onmouseover=?tooltip_on(??,?려 려(여), 이름>麗</SPAN><SPAN lang=EN-US>)</SPAN>를 복속시켰다<SPAN lang=EN-US>.
<DIV class=autosourcing-stub></DIV></SPAN></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Arial" lang=EN-US><o:p></o:p></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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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href="javascript:self.close();"><IMG style="WIDTH: 451px; HEIGHT: 310px" border=0 name=imgSrc alt="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창이 닫힙니다" src="http://dicimg.naver.com/100/800/76/235176.jpg" width=499 onload=resize() height=351></A><BR><BR><IMG style="FILTER: ; WIDTH: 452px; HEIGHT: 329px" border=0 name=imgSrc src="http://dicimg.naver.com/100/800/82/235182.jpg" width=590 onload=imgload() height=395><BR><BR><IMG style="FILTER: ; WIDTH: 452px; HEIGHT: 332px" border=0 name=imgSrc src="http://dicimg.naver.com/100/800/71/235171.jpg" width=590 onload=imgload() height=395><BR><BR><IMG style="FILTER: ; WIDTH: 453px; HEIGHT: 332px" border=0 name=imgSrc src="http://dicimg.naver.com/100/800/68/235168.jpg" width=590 onload=imgload() height=395><BR><BR><IMG style="FILTER: ; WIDTH: 453px; HEIGHT: 338px" border=0 name=imgSrc src="http://dicimg.naver.com/100/800/77/235177.jpg" width=590 onload=imgload() height=395><BR><BR><BR>출처 : 네이버테마백과사전<BR><BR><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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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B style="mso-bidi-font-weight: normal"><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중앙스텝지역 유목민족의 세력 팽창<SPAN lang=EN-US><?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SPAN></SPAN></B></P>
<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투르크계 돌궐제국과 위그르제국이 망했다<SPAN lang=EN-US>. 그러나 이것으로</SPAN> 유라시아 중앙스텝지역에서의 정치활동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SPAN lang=EN-US>. </SPAN>이 기간은 분열과 정쟁과 내란의 과도기였으므로<SPAN lang=EN-US>, </SPAN>그 결과로 생긴 세력의 공백이 중국 변방에 새로운 제국의 출현을 가능케 하고 있었다<SPAN lang=EN-US>. </SPAN>유라시아 중앙스텝지역은<SPAN lang=EN-US> 10</SPAN>세기와<SPAN lang=EN-US> 11</SPAN>세기의 전 기간을 거치며 체계가 잡힌 위그르족<SPAN lang=EN-US>, </SPAN>탕구트족<SPAN lang=EN-US>, </SPAN>거란족 등의<SPAN lang=EN-US> </SPAN>군소 반<SPAN lang=EN-US>(</SPAN>半<SPAN lang=EN-US>)</SPAN>정착국가들로 둘러싸여 있었다<SPAN lang=EN-US>. 그러나 </SPAN></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당시 그들의 관심은 주로 자신들의 변방국가들에 기울어 있었기에 중앙스텝지역의 활동에 대해서는 관심이 소홀하였고<SPAN lang=EN-US>, </SPAN>스텝의 서쪽에 있었던 투르크계 제국들은 극심한 내부 분열을 겪고 있었으므로 또한 이 지역에 무관심하였다<SPAN lang=EN-US>. </SPAN>따라서 중앙스텝지역에 대한 이러한 세력의 공백기에 몽골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유목민족제국사에서 여러번 있었던 일로<SPAN lang=EN-US>, </SPAN>이는 힘의 공백을 메우는 새로운 제국의 탄생이었다<SPAN lang=EN-US>. </SPAN>이전부터 이 지역에서 세력을 형성하였던 메르키트<SPAN lang=EN-US>, </SPAN>나이만<SPAN lang=EN-US>, </SPAN>타타르<SPAN lang=EN-US>, </SPAN>맹고족<SPAN lang=EN-US>(</SPAN>萌古<SPAN lang=EN-US>)</SPAN> 등의 부족들도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또한 몽골계일 가능성이 많다<SPAN lang=EN-US>.<o:p></o:p></SPAN></SPAN></P>
<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BR>징기즈칸이 태어나 성장기를 보낸 몽골 초원지대는 강수량이 적어 농업이 불가능한 지역이었으므로<SPAN lang=EN-US>, </SPAN>여기서 사는 민족들은 이동을 거듭하는 유목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SPAN lang=EN-US>. </SPAN>유목민족은 농경민족과 달리 자급자족이 불가능했으므로 그들은 남방의 선진민족인 한족<SPAN lang=EN-US>(</SPAN>漢族<SPAN lang=EN-US>)</SPAN>과의 교역을 열어 놓으려고 항상 노력을 기울여왔다<SPAN lang=EN-US>. </SPAN>그러나 유목민족과 농경민족 사이의 교역은 항시 전쟁으로 발전할 소지가 많았다<SPAN lang=EN-US>. </SPAN>비록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있었다고 하지만<SPAN lang=EN-US>, </SPAN>몽골족을 위시한 주변의 유목민족들은 군사적으로는 결코 한족에 뒤지지 않았다<SPAN lang=EN-US>. </SPAN>그 당시에 중국대륙에서 기마병의 위력은 가히 가공할 만 하였다<SPAN lang=EN-US>. </SPAN>유목민족의 일상생활은 바로 기마병의 훈련과정이었으며<SPAN lang=EN-US>, </SPAN>잠재적으로 그들은 언제든지 기마병으로서 중원<SPAN lang=EN-US>(</SPAN>中原<SPAN lang=EN-US>)</SPAN>을 공략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SPAN lang=EN-US>.<o:p></o:p></SPAN></SPAN></P>
<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BR>중국역사에서 오랑캐<SPAN lang=EN-US>, </SPAN>즉 호족<SPAN lang=EN-US>(</SPAN>胡族<SPAN lang=EN-US>)</SPAN>이라 멸시해왔던 유목민족은 송대<SPAN lang=EN-US>(</SPAN>宋代<SPAN lang=EN-US>)</SPAN>에 와서 급격히 성장을 이루었다<SPAN lang=EN-US>. </SPAN>물론 이전에도 흉노족이 기원전<SPAN lang=EN-US> 3</SPAN>세기에 중국대륙을 침략했으며<SPAN lang=EN-US>, </SPAN>이후에도 선비족이나 돌궐족 등이 꾸준히 한족사회를 위협했다<SPAN lang=EN-US>. </SPAN>그러다 송대에 이르러 북방의 유목민족들은 또다시 새로운 팽창의 시대로 들어섰다<SPAN lang=EN-US>. </SPAN></SPAN></P>
<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SPAN lang=EN-US></SPAN></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Arial"><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 lang=EN-US><BR>5</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black;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세기 후반 <SPAN style="mso-bidi-font-weight: bold">거란족<SPAN lang=EN-US>(</SPAN>契丹族<SPAN lang=EN-US>, Khitan)</SPAN></SPAN>은 당시 강성한 고구려의 압력을 피하기 위하여 요서<SPAN lang=EN-US>(</SPAN>遼西<SPAN lang=EN-US>)</SPAN>지방으로 남하하면서 중국과 마찰을 빚게 되었다<SPAN lang=EN-US>. </SPAN>그러나 아직 완전한 국가의 면모를 갖추지 못한 거란은 북조<SPAN lang=EN-US>(</SPAN>北朝<SPAN lang=EN-US>)</SPAN>에 속한 여러 왕조에게 조공을 바치며 그 안전을 보장받으려 했다<SPAN lang=EN-US>. </SPAN>당<SPAN lang=EN-US>(</SPAN>唐<SPAN lang=EN-US>)</SPAN>은 요주<SPAN lang=EN-US>(</SPAN>遼州<SPAN lang=EN-US>)</SPAN>총관부<SPAN lang=EN-US>, </SPAN>송막<SPAN lang=EN-US>(</SPAN>松漠<SPAN lang=EN-US>)</SPAN>도독부를 이 지역에 설치하였고<SPAN lang=EN-US>, </SPAN>거란족을 기미주<SPAN lang=EN-US>(</SPAN>羈縻州<SPAN lang=EN-US>)</SPAN>로 편성하여 지배하에 두었다<SPAN lang=EN-US>. </SPAN>그러나 중국 사회가 혼란해지고<SPAN lang=EN-US> </SPAN>위그르제국의 세력이 쇠퇴해지자<SPAN lang=EN-US>, 907</SPAN>년에 야율<SPAN lang=EN-US>(</SPAN>耶律<SPAN lang=EN-US>)</SPAN>부족 출신 아보기<SPAN lang=EN-US>(</SPAN>阿保機<SPAN lang=EN-US>)</SPAN>는 오늘날 차하르<SPAN lang=EN-US>(</SPAN>察哈爾<SPAN lang=EN-US>, Chahar)</SPAN>성<SPAN lang=EN-US>(</SPAN>省<SPAN lang=EN-US>) </SPAN>지역에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고<SPAN lang=EN-US>, 908</SPAN>년 흩어진 거란<SPAN lang=EN-US> 8</SPAN>개 부족을 통합하고 추장이 되었다<SPAN lang=EN-US>. </SPAN>그리고 야율아보기<SPAN lang=EN-US>(</SPAN><SPAN lang=EN-US>872~926</SPAN>년<SPAN lang=EN-US>)</SPAN>는 한인<SPAN lang=EN-US>(</SPAN>漢人<SPAN lang=EN-US>)</SPAN>을 거란 내부로 강제 이주시켜 거란제국<SPAN style="mso-bidi-font-weight: bold" lang=EN-US>(907~1125</SPAN><SPAN style="mso-bidi-font-weight: bold">년<SPAN lang=EN-US>)</SPAN></SPAN>을 세웠다<SPAN lang=EN-US>. <o:p></o:p></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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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70 height=39>
<TBODY>
<TR vAlign=top>
<TD height=37><IMG align=absMiddle src="http://static.naver.com/100/theme/travelworld/bullet_theme.gif"> <B><FONT color=#53849b size=3>버흐</FONT></B></TD></TR></TBODY></TABLE>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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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windowtext">한국인들은 누구나 몽골하면 연상하는 것이 고비사막일 것이다<SPAN lang=EN-US>. </SPAN>전 몽골국토의<SPAN lang=EN-US> 23%</SPAN>를 차지하는 고비사막의 관광객 휴양지는<SPAN lang=EN-US> 5</SPAN>월에 영업을 개시하여<SPAN lang=EN-US> 9</SPAN>월에 철수를 한다<SPAN lang=EN-US>. </SPAN>일본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 여러 편의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고 얼음계곡<SPAN lang=EN-US>(</SPAN>여름에도 얼음이 있는 계곡<SPAN lang=EN-US>), </SPAN>모래둔덕의 이름있는 곳이 관광객들을 부르고 있고 신기루도 접할 수 있는 곳이다<SPAN lang=EN-US>.</SPAN></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windowtext"><SPAN lang=EN-US><?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 <BR>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TBODY>
<TR>
<TD><IMG onclick=imgOrignWin(this); src="http://www.kmnews.co.kr/site/_system/include/image.view.php?id=info_kwangwang&uid=242"></TD></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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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articles>몽골은 지금 라마불교가 국교인 나라이지만 몽골 전통은 샤마니즘에 기반을 둔다. 중세기 중반부터 티벳을 통해 불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해서 20세기 초에 몽골 남자들의 3분의 1이 스님일 정도로 불교가 넓게 전개되었다. <BR><BR>그렇지만 몽골 불교는 티벳이나 인도 불교와 달리 샤마니즘의 요소를 많이 수용했다.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풍습이 샤마니즘에서 유래된 것이다. 몽골사람들이 높은 산이나 독특한 자연현상을 지닌 곳에 신이 있다고 믿었고 그 신을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되었었는데 그것은 바로 돌을 올려 쌓은 오보였다. <BR><BR>처음엔 그냥 돌만 올리다가 나주에는 하닥(불교용으로 쓰이는 푸른천)돈, 유제품, 술 등 소중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갖다바치게 되었다. 지금은 높은 산, 독특한 자연현상을 지닌 곳, 강, 홀로 선 나무 옆에서 오보를 흔히 볼 수 있다.<!--"<--></A><XMP>출처 : 칭기스여행사</XM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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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B style="mso-bidi-font-weight: normal"><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생활 양식<SPAN lang=EN- US><?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SPAN></SPAN></B></P>
<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FAMILY: 굴
림; FONT-SIZE: 9pt" lang=EN-US><o:p> <BR>몽골인들은 본래 수줍음이 많은 편이다. 대부분의 몽골 사람들은 말이 적고, 과 묵하고, 관대하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미신적이기도 하다. 떠들썩하고 이중적인 것은 품위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몽골인들은 놀이를 할 때 흥분하거나 , 화를 잔뜩 낼 수도 있다. 몽골인 들은 불쾌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얘 기가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BR><BR>친구나 아는 사람에 대해서 나쁘 게 말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에 불쾌한 말을 하게 되 면 사람들은 이것을 될 수 있는 대로 재치 있게 그리고 악의 없게 한다. 반면에 좋은 의지의 표현이나 칭찬은 넓게 사용된다. 모국,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 집 주인 환대 등등에 대한 칭찬이 특히 많다. 외국 손님들은 몽골 인들이 친절하다고 얘기한다. 몽골인들의 유목 전통은 친절과 환대를 향상시켰다. 반경 50킬로 에 한 가구 정도가 유목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에게는 지 나가는 사람도 반가운 손님이 된다. 드문드문 거주하는 지역 , 호된 기후와 유목생활이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과 감정을 표 현하는 방법 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BR><BR>몽골에서 상황 및 시간에 따라 다양한 이사 종류가 잇다. 도시인 들은 주로 “사인 바인 오?”(Sain baina uu, 잘 있어요?)라고 할 때, “사인”(Sain, 잘 있어요) 라고 대답한다. 전통적으로 부정적인 대답은 용납되지 않는다 . 인사하고 나서 얘기하는 중에만 무슨 걱정거리가 있으면 언 급할 수 있다. 시골 사람들은 “겨 울을 잘 보내고 있습니까?”, “평화롭게 이번 봄을 지내고 있습 니까?”라고 계절에 맞게 인사한다. 양을 키우는 사람들은 “평화롭게 방목합니까?”나 “양은 잘 살 찌우고 있습니까 ?”라고 한다. “평화”라는 단어가 인사에서 자주 사용된다. 몽골어의 의미로는 그것이 행복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사람들 은 걱정이 없으면 평화로운 것이고, 그것이 곧 행복이라고 믿는다.<BR><BR>몽골에서 여행자나 손님이 집주인이나 안주인 이 일하고 있을 때 만나면 또 독특한 인사말을 한다. 예를 들면 , 안주인이 소젖을 짜고 있을 때 만나면, “당신의 우유자루에 우유가 가득 차기를 바란다” 라 고 하며 만약에 양모를 때리고 있으면 “양모가 비단처럼 부드 러워지길 바란다” 라고 한다. 가 족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으면 모두 한번씩 이기기를 바란다. 그리고 대답은 “당신 말 대로 되기를 “이라고 한다.<BR><BR>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존 경하는 사람과 얘기할 때 상대방 이름 뒤에 “구아”라고 붙인다. 나이 많은 낯선 남자한테 는 “아흐”(Ah, ‘오빠’, ‘형’이라는 뜻), 여자의 경우 “에끄츠”(Egch, ‘언니’, ‘누나’라는 뜻 )라고 말한다.<BR>게르 문을 두드릴 때도 “들어가도 되느냐”고 일반적으로 묻지 않는다. 손님이 게르에 다가올 때 큰 소리로 “ 개를 묶어주세요”(몽골말로 “Nohoi hori!”) 라고 한다. 개가 없어도 손님이 온다는 것을 집주인에 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BR><BR>집주인과 안주인이 모자 를 쓰고 델의 단추를 채우고 손님을 마중 나온다. 유럽에서 남 자들이 만날 때 모자를 벗지만 몽골에서는 이런 경우 모자를 쓰는 것이 예의이다. 집주인이 말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고 게르 안으로 모신다. 맨 먼저 남자들은 코담배 통을 교환한다. 손님은 집주인이 접대한 코담배 통을 받아서 코담배를 조금 맡고 돌려준다. 통 뚜껑을 꽉 닫아서 돌려주면 안된다. 그 다음에 안주인이 손님을 새 차를 끓여 접대한다. 손님한테 어디서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를 묻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손님이 스스로 날씨, 가축 등에 대한 일반적인 회화가 끝난 후 에 얘기해야 한다.<BR><BR>몽골 사람들은 게르 안 에 있을 때도 고유 풍습을 가지고 있으며 손님은 옛날 금기를 존중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난로에 물을 쏟거나 쓰레기를 버리 는 것, 난로에 있는 불을 칼로 대는 것, 우유를 엎지르는 것 등이 금지돼 있다. 게르 안에서 휘파람을 불거나 게르 받침에 기대면 흉조를 일으킨다고 생각된다. 여름에는 집주인이 차 대신 마유주(아이락, 발효시킨 말젖)을 접대한다. 우호적인 관계를 성립하려면 마유주를 한 컵으로 마신다.<BR><BR></o:p></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SPAN lang=EN-US>출처 : EXEFEEL</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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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바탕글>킵차크한국[金帳汗國]·오고타이한국·일한국·차가타이한국을 말한다. 몽골제국의 분열조짐은 칭기즈칸시대 아들에게 땅을 분봉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칭기즈칸은 장남 조치, 차남 차가타이, 3남 오고타이에게서 북외몽골 및 그 서부를 봉지로 주었고, 막내아들 툴루이는 곁에 두었다. 오고타이(태종) 때에 이르러 바투가 남러시아에 킵차크한국을, 차가타이는 중앙아 시아에 차가타이한국을 건설하고, 오고타이는 외몽골·내몽골, 그리고 북중국을 점령하였으나 툴루이는 봉토를 갖지 못하였다. </P>
<P class=바탕글>태종의 아들 정종이 일찍 죽자 쿠릴타이는 툴루이의 아들 헌종을 황제로 옹립하였으며, 헌종은 외몽골지방으로부터 북중국의 지배자가 되었다. 헌종은 새로운 봉지를 찾기 위해 동생 훌라구를 페르시아에 파견하여 일한국을 세우게 하는 한편 자신은 동생 쿠빌라이와 함께 남송(南宋)을 정복하기 위해 나섰다. 전쟁 도중에 헌종이 죽었으며, 쿠빌라이는 베이징[北京]으로 귀환하여 임시 쿠릴타이를 개최하고 1260년 대칸[大汗]에 즉위하였다. 그러자 이를 반대하던 사한국이 독립을 선언하였다. </P>
<P class=바탕글>
<P class=바탕글>오고타이한국(1218∼1310)은 몽골적 색채가 가장 강한 나라였다. 오고타이한국의 지배자 하이두(Haidu)는 전몽골의 지배권을 얻기 위해 30여 년 중앙의 세조에 대항하였으나 실패하였으며, 그후 차가타이한국에 합병되었다.즉, 칭기즈칸은 중앙아시아 원정을 떠나기에 앞서 미리 그 일대의 땅을 여러 아들에게 분봉(分封)했는데, 오고타이는 톈산북로[天山北路]의 에밀 지방(현재의 중국령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북서부에 위치)으로부터 이르티슈강 상류지방을 소령지(所領地)로 받았다. 오고타이[太宗]와 그의 아들 구유크[定宗]는 잇따라 몽골제국의 대칸[大汗]이 되어 수도인 카라코룸으로 옮겨갔으나, 남은 일족은 원래의 소령지를 계승하였다. </P>
<P class=바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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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808080 size=2>몽골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는 분들을 위해 몽골(蒙古)에대한 유래를 먼저 설명하는 것으로 한다.<BR></FONT><A href="http:///"><SPAN style="FONT-SIZE: 10pt"><FONT color=#808080><IMG border=0 align=left src="http://www.mongolschool.com/mongol/images/m-conquest.jpg" width=346 height=180></FONT></SPAN></A><SPAN style="FONT-SIZE: 10pt"><BR><FONT color=#808080> 사실 </FONT></SPAN><FONT color=#477eb7><SPAN style="FONT-SIZE: 10pt">몽골(Mongol)은 원래 "용감한"이란 뜻</SPAN></FONT><FONT color=gray><SPAN style="FONT-SIZE: 10pt">을 지닌 부족어였으나, 징기스칸이 지닌 특별한 카리스마(Charisma)로 인해 오늘날엔 전체 몽골인 과 몽골어를 지칭하는 표현이 되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SPAN></FONT><FONT color=#477eb7><SPAN style="FONT-SIZE: 10pt">몽고(蒙古)라는 이름은 중국 사람들이 몽골을 비하(卑下)하기 위해 '우매할 몽(蒙)'과 '옛 고(古)'를 사용한데서 비롯</SPAN></FONT><FONT color=gray><SPAN style="FONT-SIZE: 10pt"> 되었다고 하는데 이처럼 민족간의 갈등과 경쟁은 결국 상대 민족을 비하 시키는 형태로 나타났던 것으로 볼 수 있다. <BR><BR>따라서 아직도 한자로는 몽고(蒙古)라고 표기 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 엄연히 몽골리아의 공식 국가명칭이 MONGOLIA 이고 민족이나 민족어를 지칭할 때 MONGOL 이라고 표기 함으로 우리는 </SPAN></FONT><FONT color=purple><SPAN style="FONT-SIZE: 10pt">몽골국</SPAN></FONT><FONT color=gray><SPAN style="FONT-SIZE: 10pt"> 또는 </SPAN></FONT><FONT color=purple><SPAN style="FONT-SIZE: 10pt">몽골인, 몽골어</SPAN></FONT><FONT color=gray><SPAN style="FONT-SIZE: 10pt"> 등으로 지칭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으로 보인다.</SPAN></FONT>
<P style="LINE-HEIGHT: 160%" align=left><FONT color=#666666 size=2>몽골의 역사는 역시, 정복자 칭기스칸 과 함께 시작된다고 해야 할 것 같다.</FONT></P>
<P style="LINE-HEIGHT: 160%" align=justify><FONT color=#666666 size=2> 초기 몽골족 가운데는 몽골계 외에도 투르크나 탕구드계(西夏)등 여러 언어 집단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13 C 초 테무진이 칭기스 칸에 추대되고 몽골제국을 창건하면서 세계무대에 인식된 [칭기스칸]과[몽골]이 갖는 두단어의 카리스마(Charisma)로 인해 그들 소수부족 각자의 언어와 의식 모두는 철저히 몽골에 동화되고 만다. 이렇다보니 오늘날 몽골족 대부분이 칭기스칸을 자신들의 시조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 일 것이다.</FONT></P>
<P style="LINE-HEIGHT: 160%" align=justify><FONT color=#666666 size=2> 이렇게 주류를 이룬 몽골과 소수부족들이 어우러져 형성된 몽골은 칭기스 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원(元)왕조를 세우면서 드디어 국가형태를 갖게되는데, 원(元)왕조 [1271 ~ 1368 ]는 원(元)의 마지막 황제 -토곤 테무르(재위 1330-1370:元 순제)-를 끝으로1368년 주원장(홍무제)의 명(明)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 후 몽골은 지금의 고비사막지역으로 쫓겨나 13세기의 화려한 모습을 숨긴채 북원(北元)이라는 고립 국가로 남게 된다.</FONT></P>
<P style="LINE-HEIGHT: 160%" align=justify><FONT color=#666666 size=2>(기록에 의하면 1377년까지 고려는 북원과 부분적으로 무역거래를 했던 것으로 보임)</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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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LINE-HEIGHT: 160%" align=left><FONT color=#4177ae face=굴림체><SPAN style="FONT-SIZE: 12pt"> </SPAN></FONT><FONT color=teal face=굴림체><SPAN style="FONT-SIZE: 11pt"><B>"터키어와 몽골어의 관계 고찰"</B></SPAN></FONT><FONT color=teal size=2 face=굴림체><BR></FONT></P>
<HR style="LINE-HEIGHT: 160%" color=#e0e8e0 SIZE=5 noShade>
<P style="LINE-HEIGHT: 160%" align=left><FONT size=2 face=굴림체> </FONT><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터키어와 몽골어 사이에 경계선을 그을수 있을지 여부 역시 시대를 올라가면 갈수록 모호해진다.</FONT></P>
<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터키어 최고 문헌이 8세기 전반(퀼 테킨 비문은 그 대표)에 작성된 것임에 비하여, 몽골어 최고 문헌은 13세기에 쓰여졌다는 점에서 13세기 이전 이 두 언어를 비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예컨데 카간이라는 호칭에 대해서 [투르크 몽골어에서 기원한 어휘]로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두 언어의 공통 요소 또는 유사 요소(특히 어휘)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FONT><FONT color=gray face=굴림체> </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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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SG_ArticleSubHeadLine class=articleView-Mr>맨밥에 소금 뿌려서 먹고 서서히 기력 회복</DIV>
<DIV id=SG_ArticleBody class=articleView>
<DIV style="DISPLAY: none" id=SG_ArticleID class=articleView-T>20110120003709</DIV><!-- <div id="SG_ArticleHeadLine" class="articleView-T"> [소설가 배수아의 몽골 에세이] <9> 알타이 병에 걸리다</div>
<div id="SG_ArticleSubHeadLine" class="articleView-M"> 맨밥에 소금 뿌려서 먹고 서서히 기력 회복</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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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 11pt"><IMG border=0 src="http://www.mongolschool.com/mongol/images/02ms-gol-cul-food_htm_smartbutton2.gif" namo_npi=":EmbededNPI2"><STRONG><FONT color=#4177ae face=굴림체> </FONT></STRONG></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Times New Roman'; mso-font-kerning: 1.0pt;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language: KO; mso-bidi-language: AR-SA"><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0pt; mso-bidi-font-family: 'Times New Roman'; mso-font-kerning: 1.0pt;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language: KO; mso-bidi-language: AR-SA"><FONT color=gray face=굴림체>몽골의 </FONT></SPAN></SPAN><A name=술><SPAN style="FONT-SIZE: 11pt"><B><FONT color=#195999 face=굴림체>술</FONT></B></SPAN></A><FONT face=굴림체><SPAN style="FONT-SIZE: 11pt"><B><FONT color=#195999> </FONT></B></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mso-bidi-font-family: 'Times New Roman'; mso-font-kerning: 1.0pt;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language: KO; mso-bidi-language: AR-SA"><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0pt; mso-bidi-font-family: 'Times New Roman'; mso-font-kerning: 1.0pt;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language: KO; mso-bidi-language: AR-SA"><FONT color=gray>은 일반적으로 </FONT><FONT color=#4177ae>[보드카]</FONT><FONT color=gray> 와 </FONT><FONT color=#4177ae>[아이락]</FONT><FONT color=gray> 그리고 </FONT><FONT color=#4177ae>[아르히]</FONT><FONT color=gray>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FONT></SPAN></SPAN></FONT>
<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gray face=굴림체><SPAN style="FONT-SIZE: 10pt"> 먼저 보드카는 </SPAN></FONT><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0pt; mso-bidi-font-family: 'Times New Roman'; mso-font-kerning: 1.0pt;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language: KO; mso-bidi-language: AR-SA"><FONT color=gray face=굴림체>스미르노프 등의 러시아산 보드카나 칭기스칸 등의 몽골산 보드카를 즐겨 마시며 알콜도수가 40도 정도로 독한 편이다. 반면 아이락(6~7 도) 이나 아르히 등은 비교적 알콜 도수가 낮아 편하게 마실수 있으나 이것도 은근히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과음하는 것은 금물이다.<BR> <BR>아이락은 말젖을 발효시킨 술로 한국의 막걸리와 비슷한 맛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몽골인들은 어려서부터 거의 식사 처럼 아이락을 마시고 자라기 때문에 아이락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FONT></SPAN></P>
<P style="LINE-HEIGHT: 150%"><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0pt; mso-bidi-font-family: 'Times New Roman'; mso-font-kerning: 1.0pt;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language: KO; mso-bidi-language: AR-SA"><FONT color=gray face=굴림체>또한 아르히는 </FONT><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10pt"><FONT color=gray face=굴림체>가축의 젖으로 만든 요구르트를 끓여서 증발시킨 후 액화시킨 술로써 투명하며 알코올 농도가 약하고 맛이 고와 정종과 비슷하지만 젖냄새가 나며 은근히 취하는 고급 술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FONT></SPAN></SPAN></P>
<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gray face=굴림체><SPAN style="FONT-SIZE: 10pt">전통적으로 몽골인들은 술을 상당히 즐기는 편이고 가정형편에 상관없이 손님에게 술 대접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으며, 손님이 술에 취할 때 까지 술을 권하는 습관이있다.</SPAN></FONT></P>
<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gray face=굴림체><SPAN style="FONT-SIZE: 10pt">따라서 몽골에서 술을 마실땐 적절히 자기의 주량을 조정해 가면서 술을 마시는 요령이 필요하며 술자리에 초대받게 되면 비록 술을 못한다 하더라도 어느정도의 예의는 갖추는 것이 중요하고, 정말 술을 못할 경우는 사전에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다. <BR><BR> </SPAN></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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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FONT color=#4177ae size=3 face=굴림체>1) 하얀음식 & 빨간</FONT></STRONG><A name=음식><SPAN style="FONT-SIZE: 11pt"><FONT color=#195999 face=굴림체><STRONG>음식</STRONG></FONT></SPAN></A><FONT color=#4177ae><SPAN style="FONT-SIZE: 11pt"><BR></SPAN></FONT>
<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ff9900 size=3 face=굴림체><B><IMG border=0 alt=sheep.gif align=left src="http://www.mongolschool.com/mongol/images/sheep.gif" width=92 height=62></B></FONT><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몽골 초원민의 식탁은 <B><하얀 음식></B>과 <B><빨간 음식></B>으로 채워진다. <BR></FONT><FONT color=#4177ae size=2 face=굴림체><하얀 음식></FONT><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은 가축의 젖으로 만든 각종 유제품을 총칭하는 말이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충분히 짜낸 우유로 여러 가지 유제품을 만든다. 유제품은 보존식품으로서 1년 내내 먹는 음식이다. 그러나 그 질과 양에서 유제품이 가장 풍성한 계절은 역시 여름이다.<BR>한편</FONT><FONT color=#4177ae size=2 face=굴림체><빨간 음식></FONT><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은 가축을 도살하여 얻는 육류를 총칭하는 말이다.가을에 통통하게 살찐 가축을 도살해 혹한기에 대비한다. 따라서 육식이 가장 풍성한 계절은 기본적으로 겨울이다. 몽골 초원민의 식탁은 이와 같이 여름을 정점으로 하는 <하얀 음식>과 겨울을 정점으로 하는 <빨간 음식>이라는 명료한 계절성을 갖는 두가지 주식에 의하여 유지되고 있다. 모두가 가축이 가져다 주는 큰 선물이다. 여름날 몽골 초원에서는 많은 유목민들이 유제품을 널빤지에 펴거나 가죽부대에 넣어 천막 위에서 햇볕에 말린다. 유제품을 말리기 위한 받침대를 마련하기도 하고,새의 피해를 막기 위해 죽은 까치를 매단 경우도 여름철 몽골 초원에서는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 </FONT></P>
<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4177ae face=굴림체><B><SPAN style="FONT-SIZE: 11pt">2) 음식의 의미</SPAN></B><SPAN style="FONT-SIZE: 11pt"><BR> </SPAN></FONT><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일반적으로 <하얀 음식>은 그 색깔 때문에 청렴과 진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된다.<하얀음식>에 더하여 <빨간 음식>은 풍성함을 나타낸다. 몽골의 대표적 화가 '샤라브'가 그린 가을풍경 속에도 양의 도살장면이 포함되어져 있는데,양을 여덟 개 부위로 해체해서 삶은 후, 살아 있을 때와 비슷한 모습으로 그릇에 담아 내놓는다. 그것은 </FONT><FONT color=#4177ae size=2 face=굴림체>슈우스</FONT><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라 불리고,초원에서 최고의 접대요리이다.</FONT></P>
<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4177ae face=굴림체><B><SPAN style="FONT-SIZE: 11pt">3) 보존방법</SPAN></B><SPAN style="FONT-SIZE: 11pt"><BR></SPAN></FONT><FONT size=2 face=굴림체></FONT><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 겨울의 도축기에 도살한 고기의 경우 양은 덩어리 째 보존하고,소는 대부분 육포와 같이찢어 말린다. 그리고 이처럼 찢어서 말린 고기를 보르츠라 한다. 보르츠를 갈아 만든 가루는 훌륭한 휴대식량이 된다. 내장도 또한 부위에 따라 가공된다. 약용으로 사용되는 쓸개를 빼고 어느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 특히 <빨간 음식>의 지방질은 흑한기를 견디는 데 중요한 칼로리 원이되기 때문에</FONT><FONT size=2 face=굴림체> </FONT><FONT color=teal size=2 face=굴림체>몽골에서의 지방질은 부(富)의 상징</FONT><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이 된다.</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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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MG border=0 src="http://www.mongolschool.com/mongol/images/cul-dress.gif"></P>
<HR style="LINE-HEIGHT: 160%" color=#e0e8e0 SIZE=5 noShade>
<P style="LINE-HEIGHT: 150%; 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FONT color=#4177ae size=2 face=굴림> </FONT><FONT color=#4177ae face=굴림체><SPAN style="FONT-SIZE: 9pt"> 4계절 의복인 </SPAN></FONT><FONT color=white face=굴림체><B><SPAN style="BACKGROUND-COLOR: rgb(65,119,174); FONT-SIZE: 12pt">델</SPAN></B></FONT><FONT color=#4177ae face=굴림체><SPAN style="FONT-SIZE: 9pt">은 기본적으로 오른쪽 깃을 앞으로 해서 입지만, 몽골과 달리 투르크계(돌궐)제민족은 왼쪽 깃을 앞으로 해서 입는 경향이 있었으며 특히 13세기경 몽골 일부지역에서 왼쪽 깃을 앞으로 해서 입었다는 기록도 발견되었다. 보통의 경우는 델 위에 부스라는 허리띠를 매는데 허리띠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말을 탈 때 격렬한 요동으로 인한 내장의 손상을 방지하는 기능적 역할도 하는 몽골족 의복문화의 특징이다.<BR></SPAN></FONT><FONT color=#4177ae face=굴림> <SPAN style="FONT-SIZE: 10pt"> -------- [편집자]</SPAN></FONT></P>
<HR style="LINE-HEIGHT: 160%" color=#e0e8e0 SIZE=5 noSh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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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4280c0 face=굴림><B><SPAN style="FONT-SIZE: 11pt">3. 집단범주의 정치성 </SPAN></B></FONT></P>
<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 하나의 야스탕에 불과한 할하가 할하 몽골이라 자칭하는 것은 자기네를 야스탕에서 운데스텡으로 격상시키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야스탕 이름에 몽골을 붙인다고 해서 항상 그러한 목적을 띄는 것은 아니다.</FONT><FONT color=gray face=굴림> </FONT></P>
<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예컨데 몽골국 이외에 거주하는 몽골족, 러시아령 부리야트 사람들을 들 수 있다.</FONT><FONT color=gray face=굴림> </FONT></P>
<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부리야트는 바이칼호 주변에서부터 중국 동북부, 몽골국 북부 등 넓은 지역에 걸쳐 거주하고 있다. 1958년 소련 정부는 이들의 명칭을 부리야트 몽골에서 몽골을 삭제하고 부리야트로 바꿨다. 이 명칭은 1991년 소련 붕괴에 즈음하여 부리야트가 주권을 선언한 후에도 그대로 남았다. 여기에는 부리야트인들이 스스로 부리야트 몽골이라 자칭함으로써 자기들을 몽골의 야스탕적 존재로 규정하려고 하는데 반해, 러시아 정부는 부리야트를 어디까지나 운데스텡적 존재로 간주하려고 하는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부리야트가 운데스텡적 존재가 되면 몽골과 분리된 러시아의 소수민족에 불과하지만, 야스탕적 존재라면 러시아 이외에 거주하는 몽골족과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결국 러시아정부는후자의 사태에 못을 박고 있는 셈이다.</FONT><FONT color=gray face=굴림> </FONT></P>
<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이상에서 집단의 상위범주를 운데스텡, 하위범주를 야스탕으로 설명해 보았다. 그러나 이들 범주의 명칭은 몽골국에서도 비교적 새로운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이 다른 몽골족 거주지역에서도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더구나 운데스텡과 야스탕의 구별은 할하나 부리야트의 사례에서 명확하듯이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FONT><FONT color=gray face=굴림> </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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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4280c0 face=굴림><B><SPAN style="FONT-SIZE: 11pt">2. 야스탕의 인식과 어투 </SPAN></B></FONT></P>
<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 1989년 민주화 이후 각 야스탕은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게 되었고,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은 야스탕의 전통적인 관습에 관한 저작이나 논의가 연달아 나타난 사실이다. 민주화 이후 사회주의 시대에 억압받았던 몽골족의 전통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FONT><FONT color=gray face=굴림> <BR></FONT><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여기서 야스탕 전통의 부활과 몽골족 전통의 부활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가를 검토하는 것은 현재 몽골국의 민족의식을 복합적으로 이해하는데 중요하다.</FONT><FONT color=gray face=굴림> </FONT></P>
<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특히 서몽골 또는 오이라트 몽골로 통칭되고 있는 복수 야스탕들에서 이러한 전통의 부활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주목 할만 하다. 여개에서 몽골 세계제국시대 이후 17세기 후반까지 계속된 동.서 두 몽골족(몽골과 오이라트)의 대립의 역사적 흔적을 읽을 수 있다. 몽골국에서 이 오이라트와 대립된 좁은 의미의 몽골 야스탕은 할하이다. <B>할하</B>는 몽골국 전체 야스탕의 70%를 차지하는 주요 집단이다.</FONT><FONT color=gray face=굴림> <BR><BR></FONT><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몽골국 서부에 거주하는 복수의 야스탕들이 자칭이든 타칭이든 서몽골 혹은 오이라트 몽골인데 반해, 할하는 하나의 야스탕 뿐이고, 할하 이외의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 스스로 할하 몽골이라 칭하고 있다. 그러나 서몽골 또는 오이라트 몽골 사람들은 하난의 야스탕인 할하를 단지 할하라 부를 뿐 할하 몽골이라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호칭의 존재방식을 통하여 두 집단 구성원간의 상호인식이 명백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볼수 있다. 결국 할하인들은 스스로를 할하 몽골이라 부름으로써 야스탕인 할하를 운데스텡인 몽 골 (민족)과 동의어로 쓰려고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배경에는 할하가 다수집단이고 할하방언이 몽골국 표준 방언인 점과 깊은 관련이 있다.</FONT><FONT color=gray face=굴림> </FONT></P>
<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여기에서 일종의 할하주의를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사회주의 시절에 장기집권한 독재자 체덴발 서기장은 두르부드 야스탕 출신이었고, 그 당시 몽골인들 사이에 [서부 두르부드인은 사람이 아니다. 가축의 4개의 정강이는 고기가 아니다]라는 반두르부드적인 말이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그 시절 각 기관의 회의석상에서는 할하의 야스탕으로서 지위를 명확히 하도록 요청하는 발언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보면 사히주의 시대에는 어떤 특정 야스탕이 다른 야스탕을 앞서가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면 이를 억제하는 메카니즘이 작동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야스탕을 둘러싼 논으를 검토하는 일은 몽골국(당시는 몽골 인민공화국)이라는 [국민국가]의 형성과정을 더듬어보는 일과도 관계가 있다.</FONT><FONT color=gray face=굴림> </FONT></P>
<P style="LINE-HEIGHT: 150%"><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할하의 다수의식은 전통을 이야기하는 방식에도 나타나 있다. 그들이 민주화 이후 몽골족의 전통관습을 말할 때 할하를 초월한 광범위한 몽골족을 대변한 말이 되고 있는 것은 서몽골 야스탕이 자신들의 전통을 말할 때, 반드시 자신들의 야스탕 이름을 붙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이들 서몽골 야스탕이 자기네의 전통을 말할 경우 야스탕의 특수성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다른 야스탕과 경계의식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몽골을 대표해서 말하려고 하는 할하의 [집합적 어투]와 서몽골 해당 야스탕의 [개별적 어투]는 서로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양자는 모두 몽골족의 전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서몽골 야스탕의 [개별적 어투]는 몽골족 문화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고 있으며, [집합적 어투]를 오히려 보강 하는 것이다. 그러나 빠뜨려서는 안될 점은 소수의 [개별적 어투]가 다수의 일원적인 문화나 언어에 대한 저항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는 할 수 없다는 점이다.</FONT><FONT color=gray face=굴림> </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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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LINE-HEIGHT: 150%; 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FONT color=#4177ae size=2 face=굴림> 몽골족의 민족의식을 검토할 경우 러시아나 중국 두 강대국에서 소수집단으로 거주하고있는 몽골족과 독립국 몽골(Mongolia)에서 거주하고 있는 몽골족 등 크게 2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양자 모두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지금까지 많이 소개되지 않은 후자의 관점에서 몽골족의 민족 의식을 검토해 보도록 한다</FONT><FONT color=#4177ae face=굴림> . <BR> <SPAN style="FONT-SIZE: 10pt"> -------- [편집자]</SPAN></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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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MARGIN-TOP: 1px; MARGIN-BOTTOM: 1px" align=center><FONT color=#008000 size=4>너에게</FONT></P>
<P style="MARGIN-TOP: 1px; MARGIN-BOTTOM: 1px" align=center><FONT color=#800000>-이칭호를러 작/이 안나 번역</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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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MARGIN-TOP: 1px; MARGIN-BOTTOM: 1px"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pds.kpca.co.kr/webEditorBlog/3//charottown/201007/image/20100708143904.jpg" width=500 height=3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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