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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징기즈칸(Genghis Khan, 成吉思汗)과 몽골제국(蒙古帝國) - 21
 작성자 : 관리자 2011.02.28 16:09:52, 조회 2,146 

발주나호에 머무르고 있던 테무진은 주변정세가 점차 자기에게 유리하게 호전되고, 군세도 재정비되자 토오릴에 대한 기습에 나섰다. 당시 동생 조치 카사르는 형 테무진과 떨어져 살고 있었는데 케레이트군이 그의 처자식을 습격하자 부인과 세 명의 자식을 그대로 둔 채 불과 몇명의 너케르와 함께 천신만고 끝에 테무진이 있는 발주나로 찾아왔다. 테무진은 기습에 앞서, 카사르가 온 것을 이용하여 토오릴 진영에 대한 탐지와 적의 무방비를 이끌어내려고 카사르의 너케르인 칼리우다르와 차우르칸을 이용하였다.형을 찾아 헤맸지만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형의 족적을 추적했지만, 결국은 형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형은 듣지 못했다. 나는 밤에는 별을 바라보며 초목의 뿌리를 베개삼아 누워 잤다. 나의 처자가 칸 아버지가 있는 곳에 있다. 만약 칸 아버지의 믿을만한 사신을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칸 아버지의 곁으로 가고싶다라는 거짓말을 전하였다. 그리고 테무진은 이들 사자와 케룰렌 강변에 있는 아르칼 게우기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테무진은 토오릴을 공격하기 위하여 발주나호로부터 케룰렌 강변의 아르칼 게우기로 밤에도 쉬지 않고 진군하였다. 오논강쪽으로 북상한 테무진군은 이곳에서 군사들을 보충한 뒤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테무진이 아르칼 게우기에 도달한 직후 사자들도 토오릴군의 정보를 가지고 토오릴의 사신인 이투르겐과 함께 도착하였다. 이들은토오릴은 아무 방비도 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금 장막을 세워 연회를 베풀고 있다. 재빨리 이동하여 불시에 그들을 기습 포위하시오라고 보고하였다테무진은 밤에도 쉬지않고 이동하여 토오릴군이 제제에르 운두르산의 제르협곡 입구에 있을 때 포위하여 기습공격을 감행하였다. 먼저 테무진의 결사대가 케레이트 진지를 돌파하였으며 나머지 몽골군은 이들을 뒤따랐다. 케레이트군은 당황하였지만 끈질기게 저항하였다. 케레이트군을 포위한 테무진군은 사흘 밤낮동안 포위공격을 하였다. 사흘째 되던 날 열세에 몰린 그들은 투항하기 시작하였다. 테무진은 이 전투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토오릴은 밤을 이용하여 도망쳐 나이만에게 갔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한 나이만의 장수에게 살해되었다. 몽골부 내에서 막강하던 케레이트부족의 수장인 토오릴 옹칸은 이렇게 허무하게 일생을 마쳤다. 셍굼 역시 티베트로 도망갔다가 거기서 다시 호탄과 카쉬가르 지방으로 갔으나 쿠차에서 위그르인에게 잡혀죽었다.


토오릴이 테무진에게 진 이유는 그는 테무진을 신임하여 지지해 주었고 세력을 잡도록 도와주었으나 의심이 많았다. 토오릴은 테무진의 강한 개성을 너무 늦게 파악하여 경솔하게 지원했다가 동맹을 파기하고 테무진을 공격함으로써 테무진에게 꼭같은 구실을 주었다. 토오릴은 우유부단하고 겁이 많았으며 계속 측근들에게 시달렸기에 유목민의 분쟁조정력이 풍부한 테무진에게 정치적으로 패했다. 몽골부가 보잘 것없는 집단으로 출발한 것도 테무진의 성장에는 적당하였다. 테무진은 지도자로서 족한 혈통이지만 그것을 자랑할 정도의 명문은 아니었다. 나이도 들고 고생도 하고 경험도 풍부하여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동료 너케르에게는 아주 자상하였다. 군사적으로 테무진은 자신의 후원인이자 주인이었던 토오릴의 자리를 기습으로 가로챔으로서 오랫동안 꿈꾸어온 그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테무진은 타타르나 타이치우드에게 했던 것과는 달리 케레이트를 몰살시키지 않았다. 테무진은 그들에게 저항을 멈추고 자기 군에 합류하도록 하였다. 테무진은 격렬히 저항했던 장군 카닥 바아토르의 용맹함과 주군에 대한 충성심을 칭찬하며 용서하면서 100명의 주르킨 무리와 함께 죽은 쿠일다르 세첸의 가족에게 힘을 바치도록 하였다. 토오릴의 숙부 자카 감부도 용서하고 케레이트의 왕녀들과는 혼인을 맺어, 자카 감부의 큰딸 이바카 베키는 테무진이 처로 취하고 둘째딸 소르콕타니 베키는 막내아들인 톨루이에게 주었다. 톨루이는 이외에도 토오릴의 손녀인 도쿠즈 카툰을 맞아들였고, 큰아들 주치는 토오릴의 딸 차우르 베키와 결혼하였다. 이외에 케레이트 백성들을 여러 몽골씨족들 사이에 조심스럽게 분산 배치하여 흡수하였다. 그가 승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들은 막대한 보상을 받았다. 누구보다도 토오릴의 습격을 미리 알려 생명을 구해준 말치기 바다이와 키실릭이 많은 보상을 받았다. 이 두 사람의 말치기에게 테무진은 병사와 노예 그리고 많은 가축과 물건을 준 뒤, 그들의 아홉세대까지 잘못을 추궁하지 않도록 하였다.


테무진은 쿠릴타이를 열어 군사조직과 생활관습에 관한 새로운 법령을 공포하였다. 그는 절도나 간음과 같이 문란한 풍습은 모두 금지시켰다. 그리고 그는 떨어져나간 부족, 씨족들에게 자신을 따를 경우 명성과 권위를 인정받을 것임을 알렸다.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인 큰 부족으로는 오이라트와 콩기라트가 있었다. 이들은 테무진의 군대에 편입되어 후대를 받았으나 그에게 저항한 세력들은 파멸되었다.


출처 : 석조건물 문화유산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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