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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징기즈칸(Genghis Khan, 成吉思汗)과 몽골제국(蒙古帝國) - 27
 작성자 : 관리자 2011.03.03 10:51:13, 조회 4,340 

 

샤먼(무당)에 대한 군주권의 우위 확보


몽골인들의 세계에서 샤먼(무당)의 권위는 부족 수령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자리였다. 몽골인들은 중요한 문제를 그들과 상의하고 그들의 충고를 따랐다. 그들이 퍼뜨리는 이야기는 부족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당시 몽릭의 아들 코코추가 샤먼으로 대단한 권위를 행사하였는데 평민들은 그가 백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영혼과 대화한다고 믿었다. 언젠가 그는 몽골고원에 흔히 찾아오는 매서운 추위에 벌거벗은 몸으로 황야와 산 속을 헤매다가 돌아와 “하늘이 나에게 말하기를 땅위의 모든 것을 테무진과 그의 자식들에게 주었으며 그를 징기즈칸이라 부르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징기즈칸은 그러한 이야기가 샤머니즘적인 몽골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리라 생각하고 코코추를 신임하였다.


코코추의 아버지인 몽릭은 과부인 징기즈칸의 어머니 호엘룬 에케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다. 코코추는 자신의 주술능력과 자기 아버지의 위치로 자신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여겼다. 징기즈칸이 시행한 1206년의 여러 조치에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품고 코코추의 주변에 모이기 시작하자 그는 초자연적인 자신의 권위를 이용하여 권력을 장악하려 하였다. 그는 우선 징기즈칸의 집안에 불화를 일으켰다. 그는 조치 카사르에 대한 징기즈칸의 의심을 부추겨 조치 카사르를 치게 함으로써 칸의 권위에 손상을 주려 하였다.


징기즈칸과 카사르와의 불화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징기즈칸은 그를 의심할 만하였다. 일찍이 바야우트씨족 출신의 사람이 초원의 왕자가 될 만한 후보자로 사차 베키, 자무카, 그리고 타타르족의 알락 위드르 외에 카사르도 꼽았었다. 케레이트의 토오릴과 싸울때도 카사르는 자기 처자식을 토오릴에게 남겨두었었다. 또 카사르는 여러 번 형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였다. 콩기라트족이 화친하려 왔을 때 카사르가 그들을 덮치는 바람에 그들이 자무카와 연합하게 된 일도 있었으며 타타르와 싸운 후 징기즈칸은 포로 1천명을 모두 죽이라고 하였음에도 그는 자기 타타르족 부인의 말대로 일부를 살려주었었다.


어느 날 몽릭의 일곱 아들이 징기즈칸의 동생 조치 카사르와 다투며 그를 구타하자 그는 울면서 형에게 호소하였다. 징기즈칸은 “너는 지금까지 남에게 져본 일이 없었는데 어째서 졌다고 하는가”라고 조소하였다. 화가 난 카사르는 사흘 동안이나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코코추는 징기즈칸에게 “영원한 하늘이 내게 말하기를, 한번은 테무진이 나라를 지배할 것이나, 그 뒤로는 조치 카사르다”라고 귀뜀하였다. 하늘이 코코추의 입을 통해 그의 의구심을 확인시켜주자 징기즈칸은 더 이상 카사르를 내버려둘 수 없었다.


징기즈칸은 그날 밤 말에 올라타 카사르를 체포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호엘룬 에케는 한 밤중인데도 흰 낙타가 끄는 검은 수레를 밤새 달려 해뜰 무렵에 징기즈칸을 찾아왔다. 테무진이 벡테르를 죽였을 때도 야단을 쳤지만 샤먼의 말만 듣고 친동생을 죽이려 할 때 그녀의 분노는 대단하였다. 호엘룬 에케가 도착하니 징기즈칸은 카사르의 소매를 묶고 지휘권의 상징인 모자와 허리띠를 뺏고 심문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타나자 징기즈칸은 놀라 두려워했다. 어머니는 수레에서 내려 묶여 있던 조치 카사르의 소매를 풀어 주고 모자와 허리띠를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자기의 두 젖을 꺼내 두 무릎 위로 넘쳐 내리게 하고는, "보았느냐? 너희들이 빨던 젖이 이것이다. 이 물어 찢다 못해 제 자궁을 물어뜯는 놈들아! 제 배꼽을 자르는 놈들아! 카사르가 어쨌느냐? 테무진, 너는 재능이 있으나 카사르는 힘이 있고 빼어난 궁수다. 부족들이 들고 일어날 때마다 그의 활과 화살이 그들을 길들였다. 이제 적을 무찔렀다 하여 카사르를 못 본다, 너희들이!" 하고 꾸짖었다.  징기즈칸은 어머니의 화를 겨우 달래고 나서, "어머니를 화나게 해서 두렵고 두려웠다. 부끄럽고 부끄러웠다. 물러나자, 우리가!" 하며 물러났다. 그러나 징기즈칸은 카사르에게 칭호와 명예를 되돌려주었지만 어머니 모르게 카사르에 속한 사람을 1,400명으로 대폭 줄였다.


이 사건으로 징기즈칸의 영지를 떠나 코코추를 따르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고, 아홉 종류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코코추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이중에는 징기즈칸의 막내 동생 테무게 옷치긴에 속한 예속민도 있었다. 테무게는 사람을 보내 그들을 돌아오게 하였으나, 코코추는 테무게가 보낸 자들을 때리고 걸려서 돌려보냈다. 그 다음날 테무게 자신이 코코추를 찾아갔지만, 몽릭의 일곱 아들들이 그를 에워싸며 무릎을 꿇고 빌라고 강요하였다. 이로서 코코추가 권력을 두고 징기즈칸과 겨룬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이때 아내 보르테가 징기즈칸에게 말하였다. “당신 생전에도 당신 아우들이 모욕을 받게 된다면, 당신의 사후에는 당신 아들들에게도 반역할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힘을 소유한 샤먼에 대한 공포심을 이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권력문제가 걸린 그는 물러설 수 없었다. 위기의 순간에 징기즈칸은 결단을 내렸다. 징기즈칸은 테무게에게 샤먼의 처리를 맡겼다. 며칠 뒤 코코추가 그의 아버지 몽릭과 함께 징기즈칸을 방문하러 왔을 때 테무게가 그 샤먼의 멱살을 잡았다. 징기즈칸이 그들에게 문제는 밖에 나가서 해결하라고 명령하였다. 코코추가 대칸의 장막에서 나오자마자 미리 테무게가 배치해둔 세 사람의 힘센 호위병이 그의 등뼈를 분질러버렸다. 이렇게 코코추와 테무게 사이의 다툼은 씨름이라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었다.


징기즈칸이 다시 천막으로 들어갔을 때 몽릭과 그의 아들들은 상황을 알아차리고 소매를 걷어올리면서 잡아죽일 듯하자 징기즈칸은 황급히 호위병을 불러 그를 에워싸게 하여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징기즈칸은 “코코추가 나의 동생들에게 손을 대고 나의 동생들 사이를 이간질했기 때문에 하늘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그의 목숨이 몸과 함께 떠나 가버렸다”라고 말하고 신임하던 몽릭을 나무란 후 위기를 벗어났으므로 그를 용서하였다. “뛰어난 그대의 덕성을 지킨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코코추로 인하여 콩고탄씨족의 체면은 사라졌다.”

징기즈칸은 코코추 대신에 바아린씨의 최장로이며 조용한 우순을 흰말을 타고 흰옷을 입는 샤먼 베키로 임명하였다. 이로써 징기즈칸은 샤먼에 대한 군주권의 우위를 확보하였다. 이후에도 징기즈칸은 여전히 하늘(텡그리)을 믿었으며 그의 후손들은 중국화되었든, 이슬람화되었든 모두 텡그리의 대리자임을 자처하여, 그들의 명령은 텡그리의 명령으로 되었고 그들에 대한 반역은 곧 텡그리에 대한 반역이었다.



출처 : 석조건물 문화유산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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