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징기즈칸(Genghis Khan, 成吉思汗)과 몽골제국(蒙古帝國) - 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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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관리자 |
2011.03.08 09:29:28, 조회 2,0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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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의 천도는 두 마음이 있다는 증거였다. 징기즈칸은 노하여 1214년 가을 사무카와 석말명안의 총 지휘하에 행동을 개시하였다. 완안복흥은 개봉에 위급을 고하였다. 몽골군의 진군이 알려지자 많은 성밖의 사람들이 성안으로 피난하였다. 몽골의 전위 특수부대원들은 중국인 농부로 가장한 후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밤낮없이 달려왔다. 말들이 달리다 지쳐 쓰러지자 마지막에는 걸어서 중도로 들어가는 피난민 대열에 섞여 성문 앞에 도달하였다. 이들은 성문 앞에서 삼엄한 조사를 무사히 통과하였다. 군량을 가지고 오던 금나라의 증원군이 중도와 하간 사이의 패주에서 몽골군의 습격으로 격파되어 흩어지자 피난민으로 북새통을 이룬 중도는 식량이 동이나 인육을 먹는 형편이 되었다.
이윽고 몽골군이 중도로 접근하자 성문은 닫히고 파수병들은 방어태세로 들어갔다. 성안의 몽골 특수부대원들은 각 지역으로 흩어져 민가에 금나라군의 방어용 무기인 살상용 불기름으로 불을 놓기 시작하였으며 몽골군이 이미 시내까지 들어와 싸우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시내의 이곳 저곳에서 시커먼 불기둥이 타오르고 민심이 흉흉해져 사람들은 관가와 저자거리를 털기 시작하였다. 병사들도 자리를 이탈하여 약탈과 강도, 강간, 살인에 끼어들어 중도는 생지옥이 되었다. 절망한 중도 유수 완안복흥은 자결해버렸으며 석말진충은 부하를 데리고 탈출하여 개봉에 들어갔으나 패전의 책임을 물어 처형되었다.
거란족 출신인 석말명안은 몽골군을 이끌고 입성하였고 당시 장성의 건너편 드론 노르 호수가의 환주에서 더위를 피하며 머물던 징기즈칸은 자신의 양자인 시기 쿠두쿠를 보내 성내의 재물을 환수케 하였다. 그 뒤 중도는 한달 동안 약탈이 허용되었으며 수천명의 주민들이 죽고 도시전역이 화염 속에 소멸되었다. 당시 몽골인은 도시경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으므로 금, 은, 보석의 약탈과 살육, 방화 등으로 도시를 파괴하였다. 10세기의 거란이나 12세기의 여진인은 최소한의 살육으로 왕조를 계승한 후 그들의 재산이 될 것은 파괴하지 않았으나 징기즈칸의 몽골인들은 무제한적 파괴만 있었다.
지금까지 금나라에 대한 몽골의 원정은 약탈전과 복수전의 성격을 띠어, 노예와 가축과 재물을 얻기 위한 유목민의 전투였다. 그러나 이제 거란과 한족출신 참모들의 영향으로 전쟁목적은 수정되었다. 징기즈칸은 금나라 황제에게 함락된 모든 영토의 할양을 요구하였고, 아직 함락되지 않은 하북과 산동의 모든 지역을 바칠 것과, 황제는 스스로 황제의 칭호를 포기하고 하남 왕일 것을 명령하였다.
황하의 북측지역은 무정부상태로 되어 대소의 무장세력이 자생적으로 일어났다. 또 중앙의 명령을 받을 수 없었던 지방의 군단들은 독립군벌로 변해갔다. 금나라의 고향 만주는 연락이 끊어져 속속 몽골에 집단 투항하였으며 몽골은 내몽골 초원과 예전 거란의 연운16주를 손에 넣었다. 금나라의 영역은 이제 그 새수도인 개봉 일원을 중심으로 섬서성의 일부 요새와 하남성 지역 정도로 축소되었다. 이리하여 금나라는 하남과 협서를 가진 지방정권으로 전락하였으며 몽골은 아시아 동방의 강자가 되었다.
징기즈칸은 이어 금나라의 왕을 끝까지 추격하여 그가 천도한 새로운 서울 하남성의 개봉까지 점령하려고 사무카를 보냈다. 그러나 개봉은 황하가 앞을 지켜 몽골의 기병으로는 정면공격할 수가 없었다. 사무카가 이끄는 몽골의 대부대는 서쪽으로 크게 우회하여 협서성에서 공격하기로 하였다. 1216년 말부터 1217년의 겨울 사무카의 몽골 대군은 중국의 로마라는 서안과 동관의 요새를 공격하였다. 이곳은 황하와 위수가 합류하는 관문으로 2,700m 높이의 험준한 화산이 그 입구를 막고 있어 화산 밑의 좁은 계곡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안 사무카는 다시 군대를 이동시켜 낙양방면으로 갔으나 절벽 등 험로로 해서 진군을 포기하고 그 대신 남쪽의 고산으로 빠져 낙양의 남쪽 성곽을 점령한 후 개봉 남쪽에 있는 평야로 진출했다.
이로서 금나라는 많은 병력을 모아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므로 개봉전방 4km 지점에서 그들은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히려 곤경에 빠질 지경이었다. 다행히 황하가 얼어 먼길을 우회하지 않고 그대로 강을 건너 회군하였다. 금나라는 이때부터 몽골군이 확보하고 있던 북경지역을 제외한 여러 성의 상당 부분을 수복하였다.
한편 무칼리는 요동으로 진격하였다. 그것은 거란인 석말야선이 여진족의 발상지에 가까운 요동의 동경을 점령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징기즈칸에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석말야선은 무칼리 군대의 일부를 지휘하게 되었고, 동경은 1215년 경기병의 급습으로 함락되고 말았다. 또 석말야선은 북경성의 방위를 위해 새로운 지휘관이 임명되어 부임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단 2명의 기병을 데리고 신임 지휘관을 도중에 급습하여 죽인뒤, 그의 임명장을 빼앗아 성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조정에서 새로이 임명한 지휘관이라고 하였다. 그는 초병들을 철수시키고 새로운 군관을 임명하였다. 그로부터 사흘 뒤에 무칼리는 무혈입성하여 10만8천을 헤아리는 민호와 10만명의 병사, 그리고 수많은 군량과 무기를 손에 넣었다. 이어서 오고륜, 인답호 등을 비롯한 47명의 장군들 및 32개의 성읍이 투항하였다. 이로서 무칼리는 투항한 거란족 및 여진족, 한인 무장 군벌들을 앞세워 지방자치와 같은 분할통치를 실시했다.
1211년부터 1215년까지 햇수로 5년에 걸친 금나라 침략은 몽골인에게는 거국일치의 전쟁이었다. 몽골제국 성립 후 이 작전으로 유목민들은 자신들이 대몽골국(에케 몽골울루스)의 백성이란 의식을 갖게되었다. 잡다한 유목민들을 모아 원정 6년 동안 단체생활을 통해 이들 유목민들이 몽골이라는 공통의식을 가지게 하였다. 또 자체 기술개량은 물론 선진기술 도입, 외국인 기술자 활용을 통해 전쟁 관련기술이 크게 향상되었다. 즉 몽골군은 투항한 금나라 야전군에게서 투석기나 대포, 초보적인 로케트 등 선진 공성 기술을 전수 받음으로서 호라즘 원정 때에는 한 차원 높은 전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징기즈칸의 금나라 원정은 1211년에 시작되어 짧은 휴지기가 있었을 뿐 그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으며(1227년), 그의 후계자 시대에 이르러서야 결말이 났다(1234년). 그 주된 이유는 몽골군은 기동력 있는 기병들로 지방과 무방비상태의 도시들을 파괴하는 데는 뛰어났으나, 중국인 공병들이 지키는 성채를 빼앗는 기술은 오랫동안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들은 중국원정을 초원에서처럼 수행하였으니, 계속 공격하고도 전리품만 갖고 철수했기 때문에 금이 도시를 재점령하고 갈라진 성벽과 보루를 수축하여 요새를 재건할 만한 시간적 여유를 주었다. 그런 상황에서 몽골은 어떤 요새는 두세 번 다시 점령하여야 하였다. 몽골군은 적을 대량으로 학살, 추방하거나 집단적으로 징집하였는데 학살된 자들보다 그 자리를 차지할 주민들이 항상 넘친 북중국에서는 대량학살이 별 효과가 없었다.
똑같은 군사행동을 거듭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징기즈칸은 중국에 있어서의 군사행동 일체를 무칼리한테 일임, 그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1217년의 가을 그에게 국왕 칭호를 내렸다. 징기즈칸은 금나라와 싸울 때 변절한 한족을 동원하고, 금나라에 밀려난 거란족 무장집단의 자발적인 협력이 있으면 많은 몽골기병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징기즈칸은 금나라에 대한 뒷일을 국왕 무칼리에게 맡기고 화약무기 진천뢰 등이 포함된 막대한 전리품을 가지고 몽골로 철수했다. 징기즈칸은 원래부터 정착민의 황제를 꿈꾼 적이 없었으며 그보다는 초원의 유목민인 투르크족과 페르시아인의 카간이 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이제 징기즈칸은 투르키스탄 정복을 위하여 병력의 대부분을 철수시켰고, 그가 떠난 뒤로 그의 장군들은 금나라의 군대를 격파하였으나 금나라를 붕괴시키지는 못하고 지구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금나라는 정예군단만 해도 최하 50만을 거느린 정착문명의 제1 대국이었고 몽골제국은 그때까지 겨우 10만의 기마병뿐이었다. 게다가 여진인인 금나라는 겨우 100년 전에 정주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수렵민의 피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따라서 공성전에 익숙치 못한 몽골인들은 중국인 공병들의 기술뿐 아니라 여진족 전사들의 용맹함에도 저항을 받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금나라군은 자기들이 주둔한 곳만을 무대로 했고 몽골군은 전력을 아껴가며 금나라 군대의 일부를 선택해 싸웠다.
북중국에는 한인이 인구도 많고 경제, 문화면에서 압도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1213년 몽골의 침입에서 한인 사씨 일족이 몽골측에 가담하였다. 한인을 자기편으로 둘려고 하는 외교전의 승리자가 몽골제국이었다. 몽골군이 북중국에 침입하자 지방 유지인 사병직은 가족을 모아 상담하였다. “국가는 소란상태에 있는 이때 우리 가족 100명은 어떻게 자위할 수 있는가. 몽골은 항복하는 자는 벌하지 않는다고 들었으므로 귀순하자.” 그는 같은 마을의 노인과 어린이 수천명을 데리고 칸의 군영을 찾았다. 사병직은 노인이었으므로 장자 사천아가 일족을 통솔하게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원근에서 참가한 자들이 십여만 가구에 이르렀다. 사씨 일가는 대대로 의리를 중히 여기고 재산을 가볍게 보는 것을 가훈으로 하여 토착민의 절대적인 신망을 얻었다. 사천아의 모집에 응하여 1만명의 젊은이가 모였으므로 이것을 의용군으로 조직하여 몽골군에 협력하게 하였다.
사천아는 징기즈칸을 배알하여 당면한 여러 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하였을 때 칸은 모두 동의하였다. 또 그때 무칼리가 국왕이란 칭호를 받아 대금작전의 최고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몽골 중로군을 지휘하였다. 사천아는 그에게도 한마디하였다. “지금 중원은 거의 평정되었다. 그러나 몽골군이 가는 곳에는 약탈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왕자다운 사람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 죄를 사하는 뜻에 반한다. 또 국왕은 칸의 명령을 받들어 천하를 위하여 횡포한 것을 없애는 입장에 있다. 그러나 이와 같아서는 횡포를 가지고 횡포에 답하는 것이 되지 않는가? 인민을 귀여워해 주는 것은 왕자의 책무이다. 그것을 하지 않는 자의 몰락은 빠르다.” 이후 사천아는 항복해온 금나라 장군의 배반으로 살해되어 동생인 사천택이 뒤를 이었다. 사천택은 징기즈칸 이후에도 오고타이나 쿠빌라이에 봉사하여 몽골의 중국지배에 힘을 바쳤다.
1216년 고비 북쪽으로 돌아온 징기즈칸은 몽골군을 둘로 나누어 한 부대를 이끌고 서쪽을 향하게 되었다. 참모장격의 야율아해는 징기즈칸과 같이 서쪽으로 가고 동생인 야율독화는 무칼리의 부장이 되어 동쪽으로 각각 나뉘었다. 징기즈칸은 잘라이르족 출신의 노장군 무칼리에게 태사, 국왕의 칭호를 주어 5투하라고 부르는 5개의 유력 부족집단 (잘라이르, 콩기라트, 이키레스, 우르우트, 망구트)을 위시하여 좌익중 24개의 천호와 새로 편성된 거란군 20개의 천호를 배속시켜 중국방면을 위임하였다. 몽골 정규군은 전체 병력의 절반인 2만 3,000명이고 나머지는 같은 수의 거란계 보조병이었다. 무칼리는 부족한 이들 병력을 이끌고 1217년에는 징기즈칸이 점령하지 못한 하북 남부의 거점 대명을 일시 탈취하였다. 또 1218년에는 산서의 도읍인 태원과 평양을 금으로부터 탈환하였고, 1220년에는 산동의 도읍인 제남을 탈환하였다. 그해 그의 부장은 황하 북부에 있는 하남성 창덕을 점령하였다.
무칼리는 1221년에 보안, 부주를 비롯한 섬서북부의 도시들을 빼앗고, 1222년에는 위수 남쪽 섬서의 옛 도읍 장안을 손에 넣었다. 1223년에 그는 황하 만곡부와 산서의 남서쪽 끝에 있는 중요한 요새인 하중(포주)을 기습 공격하여 빼앗았으나 기진하여 사망하였다. 무칼리는 중국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부터 기병 외에 보병, 포병을 고용하여 조직적인 점령에 힘을 기울였으며 1223년 4월 사망할 때까지 몽골에 대한 탕구트와 금나라의 대규모 저항을 막아내는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이 7년 동안 끊임없는 전쟁 끝에 그는 금나라를 다시 하남성에 가두었다. 그가 죽은 뒤 하중은 다시 금으로 넘어갔다. 그리하여 인구가 과밀하고 천연의 요새로 꽉 들어찬 북중국의 전투는 끝없는 공성전으로 변질되었다.
출처 : 석조건물 문화유산탐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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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center_image style="WIDTH: 500px"><IMG hspace=0 src="http://file.mk.co.kr/meet/neds/2011/05/image_readtop_2011_307237_1305439593423220.jpg" width=500 border=0> <BR>
<P style="MARGIN-TOP: 5px"><SPAN class=image_small><FONT face=돋움체 color=#595959>대초원에 펼쳐진 유목민의 이동식 주택 "게르"</FONT></SPAN> </P></DIV><BR>
<DIV class=read_txt>몽골은 오지 여행마니아 사이에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여행지다. 광활한 초원과 맑은 호수 등 순수 자연을 즐기고, 유목민들의 문화를 경험하며 해방감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푸른 초원 위의 하얀 게르에서 밤하늘을 수놓은 별과 달을 감상하고, 전통 방식으로 요리한 양고기를 맛보는 일도 몽골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BR><BR><BR><BR>◆ 여름은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 <BR><BR>= 몽골은 러시아의 남부, 중국의 북부에 위치한 중앙아시아의 대륙 국가다. 전체 면적이 약 156만㎢. 남한의 약 15배에 달할 정도로 광활하다. <BR><BR>여행하기 좋은 계절은 여름이다. 온도가 가장 높을 때는 7월. 이 기간 평균 기온은 12~20도 정도다. 여행은 강과 호수, 초원, 사막으로 이뤄진 몽골의 독특한 자연을 감상하면서 승마와 트레일 등을 즐기는 것으로 이뤄진다. 대초원 위의 게르에서 숙박하며 밤하늘의 은하수를 감상하며 낭만적인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몽골식 양고기 찜요리인 허르헉을 맛보는 일은 덤이다. <BR><BR>몽골 여행은 울란바토르에서 시작된다. 수도이자 몽골의 정치ㆍ경제ㆍ문화 중심지다. 울란바토르는 해발 1300m의 초원성 고원에 위치한다. 연교차가 심한 대륙성기후를 보이는데, 여름 기온은 27도 정도로 활동하기 적당하다. <BR><BR>울란바토르는 몽골어로 `붉은 영웅`이라는 뜻이다. 1995년 서울과 자매결연을 맺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96년에는 몽골의 독립기념일을 맞아 나트사그도르지의 거리 1㎞를 서울의 거리로 지정하기도 했다. <BR><BR>울란바토르에서는 간단사원, 수흐바토르광장, 자이승전망대, 자연사박물관, 겨울궁전, 테렐지국립공원 등이 주요 볼거리다. 간단사원은 몽골을 대표하는 불교사원이다. 이곳은 한때 9개의 법당과 5000여 명의 승려가 수행하던 몽골 종교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높이 25m의 초대형 입상인 미그지드 잔라이식 불상이 특히 유명하다. <BR><BR>◆ 수흐바토르광장과 테렐지국립공원 <BR><BR>= 수흐바토르광장은 1921년 몽골의 독립혁명가 수흐바토르가 몽골의 독립을 선포한 역사적인 장소다. 전형적인 사회주의 색채를 띠는 광장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정부청사, 동쪽에는 문화궁전, 남쪽에는 오페라극장이 자리한다. 인근에 외교부, 사원, 박물관 등 도시의 주요시설이 밀집해 있다. <BR><BR>수흐바토르광장 북서쪽에 세계 3대 공룡박물관으로 불리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위치한다. 몽골의 자연 생태계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몽골에서 볼 수 있는 동물, 식물, 곤충, 어류, 조류 등 약 2만점의 박제가 전시되어 있다. 공룡 화석전시관은 이곳의 자랑거리다. 고비사막에서 발굴된 15m 크기의 거대한 공룡은 특히 유명하다. <BR><BR>자이승전망대는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해 지은 전망대다. 시내 외곽에 위치해 울란바토르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BR><BR>겨울궁전은 몽골의 마지막 왕이 20년간 생활했던 곳이다. 본채는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눈표범 가죽으로 천막을 씌운 호화 게르가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1914년 몽골에 병원을 열어 의술을 전한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도 가볼 만하다. <BR><BR>울란바토르에서 자동차로 동쪽으로 1시간 정도 벗어나면 멋진 자연풍경이 있는 테렐지국립공원에 닿는다. 기이하게 생긴 바위산과 드넓게 펼쳐진 초원, 그리고 맑은 강이 조화를 이룬다. 몽골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번 찾는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했다. 테렐지란 이곳에서 많이 자라는 식물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여름에는 드넓은 초원에 각종 들꽃들이 피어 장관을 연출한다. <BR><BR>이곳에서는 승마체험이 인기다. 승마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초보자라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전문 승마가이드가 동행해 안전하다. 잘 훈련된 말을 타고 푸른 초원과 숲을 질주하는 쾌감을 맛볼 수 있다. <BR><BR>테렐지국립공원에서는 몽골인의 이동식 주택인 게르에서 숙박하며 유목민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테렐지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길에 거대한 거북바위를 만날 수 있다. 몽골인은 예로부터 거북을 신성하게 여겼다. 이 거북바위 머리가 테렐지국립공원으로 향하고 있는데, 몽골 사람들은 이 거북바위가 테렐지국립공원을 지켜준다고 믿는다. <BR><BR><BR><BR>△가는 길=<SPAN style="CURSOR: pointer; COLOR: #0b06a8">대한항공</SPAN>, 몽골항공에서 인천~울란바토르간 직항편을 운항중이다. 비행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BR><BR><BR>출처 : mk뉴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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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몽골에서 해서는 안 되는 것 </SPAN><SPAN style="COLOR: #ff0000; FONT-WEIGHT: bold" lang=EN-US>(TABOO)</SPAN></P>
<P class=바탕글>⦁몽골인과 같이 걸을 때는 장애물이 있으면 같은 방향으로만 피해가야 한다.</P>
<P class=바탕글>⦁몽골인의 게르나 가옥에서는 휘파람을 불어선 안 된다.</P>
<P class=바탕글>⦁게르에서 발을 뻗을 때는 북쪽인 신성구역으로 뻗어선 안 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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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ff0000; FONT-SIZE: 12pt; FONT-WEIGHT: bold">몽골의 공휴일 </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 lang=EN-US>1월 1일</SPAN> :<SPAN style="COLOR: #0000ff" lang=EN-US> 신년 휴일</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몽골 태음력 1월 1일</SPAN> : <SPAN style="COLOR: #0000ff">차강사르</SPAN></P>
<P class=바탕글>우리나라 설과 같은 차강사르는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이자 최대 길일이다. 상가와 시장은 차강사르 한 달 전부터 설빔과 설음식, 선물을 장만하기 위한 사람들로 술렁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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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 사증 제도 개선<BR><BR>1. 개요<BR>ㅇ 주몽골 대한민국대사관은 대한민국 입국사증을 신청하는 몽골인들의 편의를 제고하고 쾌적하고 편리한 사증 제도를 시행하기 위하여, 2011.1.10(월)부터 사증신청 대행기관 제도를 시행할 예정임. <BR>ㅇ 아울러 홈페이지 등을 통해 대한민국 사증제도에 대한 안내를 강화하고, 사증신청시 제출하는 부대서류도 간소화할 예정임. <BR><BR>2. 추진 배경<BR>ㅇ 한국을 방문하는 몽골인은 연간 약 4만명 수준이며 한국에 장기 체류중인 몽골인이 3만명을 넘어서는 등 양국간 인적 교류가 확대되고 있음. <BR>- 몽골인들은 대부분 친척 방문, 상용, 관광, 회의ㆍ세미나 참석, 유학 등의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으며, 향후 양국 관계 확대에 따라 교류 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임. <BR>※ 해외 거주 몽골인 현황 : 한국(약 3만명), 미국(약 2만 8천명), 일본(1,671명)<BR><BR>ㅇ 대한민국 입국을 위해서는 주몽골 대사관으로부터 사증을 발급받아야 하는 바, 대사관의 제한된 인력과 시설 등으로 인해 그간 사증을 신청하는 몽골인들의 불편이 초래되어 왔음. <BR><BR>※ 대한민국 사증 관련 몽골인들의 불편 예시<BR>- 한겨울 추운 날씨에 사증을 신청하기 위해 일찍부터 대사관앞에 줄을 섰으나 정해진 접수시간으로 인해 당일 접수하지 못하는 사례 발생<BR>- 대한민국 입국사증을 신청하고 싶으나 정보 부족으로 사증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BR>- 충분한 경제력을 가지고 관광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고자 하였으나, 초청장 등 부대서류 요구가 과다하여 관광을 포기하는 경우 발생 <BR>ㅇ 이러한 불편은 한ㆍ몽 인적 교류 확대 및 양국간 협력 관계 증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대한민국 대사관은 사증관련 아래 3가지 개선조치를 시행할 것임. <BR><BR>① 사증신청 대행기관 제도 도입<BR>② 사증신청 관련 안내 서비스 강화<BR>③ 사증신청시 제출하는 부대 서류 일부 간소화 <BR><BR>3. 제도 개선 내용<BR>가. 사증신청 대행기관 제도 도입<BR>ㅇ 2011.1.10(월)부터 아래 3개 기관에 대한민국 입국사증을 신청할 수 있으며, 대한민국 대사관은 매주 화요일 10:00-12:00에만 직접 사증접수를 받을 예정임. <BR>- 그러나 사증심사는 여전히 대사관이 종전과 동일하게 시행할 예정이며, 어떤 대행기관을 통해 접수되었는지는 사증발급과는 무관함. <BR>< 대한민국 입국 사증 신청 대행기관 ><BR><BR>Passport Express <BR>International Odgerel KHULAN<BR>DHL Building, Sukhbaatar district, 1 khoroo, Peace Avenue 10-5 <BR><BR>TEL : 7010-0154/0152, FAX : 7011-4458<BR>월-금 09:00-18:00<BR><BR>Mongolian-Korean association for humanitarian relation<BR>Baasanjav LKHAGVAA<BR>Sukhbaatar district, 1 khoroo, Olympic ST8, Mika hotel 2nd floor, #206<BR>Tel/Fax : 7012-4909 <BR>월-금 09:30-13:00 14:00-18:00<BR><BR>Han-Mong law<BR>HAN Hyeong-soo<BR>Bayanzurkh District, 14 khoroo, Bridge Plaza Building 4th floor # 402 <BR><BR>Tel : 463005, 463006, 463007<BR>Fax : 463008<BR>월-금 09:30-13:00 14:00-18:00<BR><BR>ㅇ 주몽골 대사관은 이들 기관이 대사관이 정한 수준을 위반하여 과다하게 수수료를 징수하거나, 사증신청 대행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 내부 규정에 따라 적절한 행정제재를 부과함으로써 편리하고 쾌적한 대한민국 사증신청제도를 정착해 나갈 것임. <BR><BR>나. 사증신청 관련 안내 서비스 강화<BR>ㅇ 대한민국 사증 제도에 대한 안내자료(사증제도 설명 및 신청 절차 안내 자료) 및 체류자격별 구비서류 목록을 사증신청인들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증신청인들의 편리와 이해를 제고할 예정임. <BR>ㅇ 동 자료는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 홈페이지의 몽골어 팝업창을 통해 접근가능하며, 사증신청 대행기관에도 동 자료를 비치할 것임. <BR>※ 주몽골 대한민국대사관 홈페이지 : <A class=autoLink href="http://mng.mofat.go.kr/" target=_blank>http://mng.mofat.go.kr</A><BR>다. 사증신청시 제출하는 부대 서류 일부 간소화 <BR>ㅇ 사증신청시 체류목적별로 제출해야 하는 구비서류를 명시하고 일부 불필요한 서류는 간소화함으로써 사증신청자의 편의를 제고할 예정임. <BR>ㅇ 특히 충분한 경제력을 가지고 관광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려는 신청자는 초청장이 없이도 관광 사증신청이 가능할 것이며,<BR>- 친척 초청, 상용 등의 경우 그동안 초청장, 신원보증서, 귀국보증각서 등을 별도로 요구하던 것을 대사관 양식의 초청장만을 제출토록 함으로써 신청인의 편의를 도모할 예정임. <BR><BR>4. 기대 효과<BR>ㅇ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면, 편리하고 쾌적한 사증신청이 가능해짐으로써 사증신청인들의 편의가 제고될 것임. <BR>- 사증접수를 위해 더 이상 주몽골대사관 앞에서 줄을 서지 않아도 되며, 사증신청 대행기관을 통해 편리하고 안전한 사증신청이 가능해질 것임.<BR>ㅇ 아울러 그동안 대한민국 사증제도에 대한 정보부족과 불편으로 사증을 신청하지 않았던 잠재적 신청자들이 늘어나게 됨으로써 한ㆍ몽간 인적 교류와 협력이 한단계 높은 수준으로 발전될 것으로 기대함. <BR>- 다만 금번 제도개선이 대한민국 사증 심사 기준의 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사증 심사는 대한민국 출입국 법령과 절차에 따라 종전과 동일하게 엄격하게 시행할 예정임. <BR>ㅇ 대한민국대사관은 금번 제도 개선 이후에도 대한민국과 몽골을 연결시키는 교량역할을 충실히 담당할 것이며, <BR>- 이를 통하여 양국간 우애와 협력이 제고되고 한국인과 몽골인이 한걸음 가까워 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함. <BR><BR>주 몽 골 대 한 민 국 대 사 관<BR><BR><BR>출처 : 몽골투어앤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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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 id=blog_title><STRONG>[최현명의 야생 동물 이야기] 몽골 헨티산맥의 설원에서 야생 늑대를 만나다 </STRONG>
<DD id=blog_subtitle>예전엔 떼지어 가축 습격…지금은 먼 발치에서도 사람 피해 </DD></DL></DIV><!-- //ARTICLE-titl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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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교포 국내송금・투자 안내<BR><BR><BR>◇ 이 안내문은 외화의 국내송금・투자를 희망하시는 해외교포에 대한 정보제공을 목적으로 작성한 것입니다.<BR><BR>◇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필요하신 경우에는 현지 대사관 또는 영사관을 통해 기획재정부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BR><BR><BR>Ⅰ. 본인명의 예금계좌로의 송금<BR><BR><BR>□ (외환규정상 제한) 재외동포가 한국내 은행에 외화를 송금하여 예금 또는 금융기관 신탁할 경우 금액상 제한은 전혀 없으며, 향후 원리금 및 이자소득의 해외송금에도 제한 없음<BR><BR>ㅇ 예금계좌는 아래 세가지 종류에서 선택 가능하며, 각 계정의 특성에 따라 향후 예금회수 절차가 상이<BR><BR>① 대외계정<BR><BR>- 외화예금으로서 향후 별도의 증빙없이 예금 및 이자소득 전액을 회수할 수 있음<BR><BR>※ 보통예금/정기예금으로 구분<BR><BR>② 비거주자자유원계정<BR><BR>* 국내에서 동예금을 인출하지 않고 이자소득 획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선택하면 유리한 방식<BR><BR>- 원화예금으로서 향후 별도의 증빙절차 없이 외화로 환전하여 회수할 수 있으나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음<BR><BR>③ 비거주자원화계정<BR><BR>* 향후 한국을 방문하거나 한국내에서의 사업 등을 이유로 한국내에서 동금액을 인출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선택하면 유리한 방식<BR><BR>- 원화예금으로서 국내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나, 회수시 환전 이전에 자금출처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함<BR><BR>※ 최초 입금시 교부받은 외국환매입증명서를 통해 자금출처를 증빙하면 되며, 동절차는 대리인이 대신 수행할 수 있음<BR><BR><BR>□ (조세부과) 예금에 따른 이자소득에 대한 소득세가 원천징수되며, 동 원천징수 금액은 각국과의 조세조약에 따라 해당국에서 종합소득과세시 외국납부세액으로 공제됨 (이중과세 방지)<BR><BR>※在美교포의 경우 한․미 조세조약에 따라 13.2%(주민세 포함) 부과,<BR>在日교포의 경우 한・일 조세조약에 따라 10%(주민세 포함) 부과, <BR>기타국가는 조세조약 현황에 따라 상이<BR><BR>Ⅱ. 본인명의 계좌로 송금한 뒤 증권투자<BR><BR><BR>□ (외환규정상 제한) 재외동포가 한국내 은행에 외화를 송금하여 주식․채권투자를 하고자 하는 경우 금액제한 없으며, 향후 투자원금 및 투자수익의 해외송금에도 제한이 없음<BR><BR>ㅇ 다만, 절차상 국내 증권회사를 상임대리인으로 지정하고 홈트레이딩 또는 증권사 중개를 통해 투자하여야 하며, 금융감독원에 외국인 투자등록이 필요함<BR><BR>※ 주식투자・채권투자・펀드투자 모두 투자절차는 동일<BR><BR>- 상임대리인을 통하지 않는 경우 본인이 투자전용계정을 직접 개설하여야 하며, 향후 회수시 절차가 복잡할 수 있음<BR><BR>□ (조세부과) 원칙적으로 capital gain에 대하여 비과세되나, 구체적으로는 투자대상에 따라 아래와 같은 차이가 있으며, <BR><BR>ㅇ 우리나라에서 과세된 부분은 조세조약에 따라 해당국에서 종합과세시 외국납부세액으로 공제 (이중과세 방지)<BR><BR><BR>① 주식투자<BR><BR>- capital gain에 대하여는 비과세되나, 배당소득에 대하여는 과세(원천징수)<BR><BR>※ 在美교포 16.5%, 在日교포 15%, 기타국가 조세조약에 따라 상이<BR><BR>② 채권투자<BR><BR>- 이자소득*은 과세되고, capital gain은 비과세<BR><BR><BR>* 채권 명목가액 대비 명목이자율을 통해 계산<BR><BR>※ 在美교포 13.2%, 在日교포 10%, 기타국가 조세조약에 따라 상이<BR><BR>③ 펀드투자<BR><BR>- 펀드투자시 신탁의 이익은 배당소득으로 과세되나, 주식투자로 인한 capital gain에 상당하는 배당소득은 과세제외<BR><BR>※ 在美교포 16.5%, 在日교포 15%, 기타국가 조세조약에 따라 상이<BR><BR><BR>Ⅲ. 타인명의 계좌로 송금<BR><BR><BR>□ (외환규정상 제한) 재외동포가 타인명의 계좌로 송금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자본거래로 분류되어 이에 대한 사전신고 필요<BR><BR>ㅇ 증여 또는 금전대차거래 두 종류가 가능한 바, 각기 상이한 자본거래 신고 등의 외환거래 절차가 적용됨<BR><BR>ㅇ 다만 송금받는 내국인이 지정은행을 정하여 당해 은행을 통하여만 송금받고 송금하는 경우에는 연간 5만불까지 자본거래 신고 및 증빙서류가 면제되어 편리한 송금이 가능<BR><BR>□ (조세부과) 증여인 경우 증여세, 금전대차거래인 경우 국내에서 이자지급시 이자소득세(원천징수)가 부과됨<BR><BR><BR>󰊱 증여거래<BR><BR>ㅇ 내국인에게 증여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절차없이 송금가능하며, 증여를 받은 내국인은 증여세 부과대상이 됨<BR><BR>ㅇ 이를 다시 증여형태로 회수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송금 이전에 “증여계약”을 한국은행에 신고해야 송금 가능함<BR><BR>< 증여세 부과개요 ><BR>■공제(10년 합산):배우자 6억원, 직계존비속 3천만원, 친족 5백만원 <BR>■ 세율 : 1억이하 10%, 5억이하 20%, 10억이하 30%, 30억 이하 40%<BR><BR>󰊲 금전대차거래<BR><BR>ㅇ 내국인에게 대출하는 형태로 송금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금전대차계약”을 맺고 내국인이 한국은행에 자본거래 신고한 후 은행에서 송금액 수령<BR><BR>ㅇ 이 경우 내국인이 향후 교포에게 재송금시 별도의 자본거래 절차는 필요없으나, 이자소득세*가 발생<BR><BR>* 在美교포 13.2%, 在日교포 10%, 기타국가 조세조약에 따라 상이<BR><BR>Ⅳ. 거래정보 보고<BR><BR><BR>□ (외환전산망 보고) 1천불 이상의 모든 자금흐름은 통계작성을 목적으로 외환전산망에 보고됨<BR><BR>ㅇ 은행 창구에서 지급․영수시 즉시 외환전산망을 통하여 한국은행 및 기획재정부에 보고<BR><BR>ㅇ 동 보고는 통계작성 및 자금흐름 모니터링을 위한 것으로 조세부과, 혐의거래 파악 등과는 무관함<BR><BR>□ (국세청 보고) 건당 1만불 이상의 자금흐름과 환전실적이 보고됨<BR><BR>ㅇ 증여 등 내국인 소득에 대한 과세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BR><BR>□ (금융정보분석원 보고) 원화 2천만원, 외화 1만불 상당 이상의 거래중 혐의거래가 보고됨 (자금세탁 방지목적)<BR><BR>ㅇ 자금세탁 등 불법혐의가 있는 거래에 대하여 금융기관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직접 보고<BR><BR>ㅇ 국제적으로 표준적인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절차이므로, 정상적인 거래시에는 전혀 우려할 필요가 없음<BR><BR>※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시행중<BR><BR><BR><BR>출처 : 몽골투어앤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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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conomist 및 World Bank는 2011년 몽골 경제 전망에 대해 아래와 같이 분석하였는 바,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BR><BR>2009 a 2010 b 2011c 2012 c<BR><BR>실질 GDP 증가율 -1.6 8.1 11.9 14.8<BR><BR>총고정투자 증가율 6.9 19.8 31.2 24.1<BR><BR>소비자 물가(인플레이션) 상승율 6.3 11.8 17.1 13.0<BR><BR>대출 이자율 20.8 20.5 24.0 22.7<BR><BR>정부 재정균형 (% of GDP) -5.4 0.0 -1.4 1.7<BR><BR>환율<BR>달러(av) 1,438 1,356 1,168 1,021<BR><BR>달러(end-period) 1,443 1,257 1,098 991<BR><BR>엔(av) 1,534 1,537 1,331 1,177<BR><BR>유로(av) 2,003 1,758 1,390 1,174<BR><BR>a : actual b: estimates c: forecast<BR><BR>1. 재정정책<BR>ㅇ 2011년도 몽골 경제의 호황이 예상되며, 재정도 경기동행적 지출(pro-cyclical spending)의 형태를 보일 것으로 전망 <BR><BR>- 2011년 정부 재정수입은 3조 3046억 투그릭, 재정지출은 4조841억 투그릭으로 정부 재정적자가 7795억 투그릭에 달해 GDP의 9.9% 규모임. <BR><BR>ㅇ 몽골정부는 최근 재정적자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수출상품 가격의 상승으로부터 발생하는 재정수입을 관리하기 위해 재정안정화법(fiscal stability bill)을 제정<BR><BR>※ 재정안정화법 : 2013년도까지 재정적자를 GDP의 2% 규모로 유지한다는 내용<BR><BR>ㅇ 몽골 정부는 2010년에 상당한 규모의 재정을 지출하였으며, 이는 인플레이션을 증가시키고, 경기 변동성(volatility)의 위험을 높였으나, 정부지출이 재정균형을 위협하지는 않을 전망<BR><BR>- 2011-2012년 몽골의 주요 광물수출 품목의 국제가격 상승이 정부 재정수입을 증가시킬 것이며, 따라서 2011년도 정부재정은 균형 또는 약간의 흑자를 달성할 전망<BR><BR>ㅇ 광업부분의 개발이 현재 예상대로 이루어진다면, 정부 조세수입이 가능한 경제활동이 활발해져, 정부의 재정수입이 늘어날 것임<BR>- 그러나, 만약 광물의 국제가격이 떨어진다면, 몽골정부 대부분의 재정을 광업관련 분야에서 충당하고 있기 때문에 재정위기가 다시 발생할 것임.<BR><BR>2. 통화정책<BR>ㅇ 인플레이션에 대한 압력이 통화정책의 주요 우려 요인이며, 몽골 중앙은행이 향후 6개월내에 이자율을 적어도 2차례 올릴 것으로 전망<BR><BR>- 인플레이션은 세계 식품가격 변동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자율을 통해서 물가상승을 억제하려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임<BR><BR>ㅇ 수년간 지속되어온 은행대출은 2009년도에 축소되었으며, 2010년도 9개월간 소폭 증가에 그침. 몽골 은행분야가 아직도 취약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급격하게 변화되지는 않을 것임 <BR><BR>ㅇ 2008년도 말에 취해진 정부 당국의 은행예금에 대한 보장은 은행 시스템의 붕괴에 대한 우려를 점차 약화시킬 것이나, 은행들이 우선 자본 충실도를 높이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대출의 증가는 천천히 진행될 전망임. <BR><BR>- 만약 은행들이 해외에서 차입이나, 유동성의 형태로 자금을 끌어들여올 수 있다면 은행 대출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음<BR><BR>3. 경제성장<BR>ㅇ 작년도 -1.6%성장에 이어 2010년도 8.1%의 경제성장 달성 전망<BR><BR>ㅇ 2010년 신용 증가를 억제시켰던 주요인이었던 은행분야의 문제점들이 2011년에는 다소 완화될 전망 <BR><BR>ㅇ 광업분야의 호황, 건축분야와 서비스 분야에서의 강한 성장과 함께 농업분야의 회복 등으로 인해 2011-2012년간 몽골경제의 호황이 예측됨. 실질 GDP는 향후 2년간 평균 13.4%의 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BR><BR>ㅇ 광업분야의 투자가 GDP 성장을 주도할 것이며, 광업분야의 투자는 광업 관련 설비 및 기계의 수입과 에너지 수입의 증가를 동반할 것임. <BR><BR>- 비록 주요 광산인 Oyu Tolgoi에서 2012년말까지는 광물을 채굴하여 수출할 수는 없지만 현재 여러 광산에서 광물 생산을 확대하고 있어, 수출 또한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이며, 광업분야에서 발생하는 세수로 사회복지분야에 대한 지출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늘어나는 정부지출이 경제성장을 더욱 촉진시킬 것임 <BR><BR>ㅇ 경제전망에 있어 가장 우려되는 것이 인플레이션인데, 이것은 소비자 신뢰를 저해할 수 있으며, 광산투자를 저해할 수 있음(투자비용이 높아지므로). 다른 한편으로는 몽골 광물의 주요 수출 대상국가인 중국경제가 하락기에 접어든다면 몽골 경제에 상당한 위협으로 작용할 것임 <BR><BR>4. 인플레이션<BR>ㅇ 인플레이션은 수입가격에 의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으며 세계금융위기로 인해 2009년도에 수입이 급격하게 감소하였으나, 최근 경기회복으로 인해 수입이 다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음.<BR><BR>ㅇ 수입 식품 및 원유가격의 재상승이 인플레이션 상승요인으로 작용해 2010년도 10월까지 인플레이션은 11.3%에 달함. 그러나 2011-2012년에는 인플레이션이 완화될 수 있는 긍정적 요인이 있는데, 수입제품의 가격인상은 투그릭의 평가절상에 의해 상쇄될 수 있을 것이며, 2009년-2010에 이르는 가축피해(zud)의 충격이 점차 사라지면서 식품가격의 인플레이션을 완화시킬 것임 <BR><BR>ㅇ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12년도의 빠른 경제성장은 모든 분야에서의 고성장을 유발할 것이며 이에 따른 공급의 병목현상으로 인해 거의 모든 소비재 가격의 급격한 상승을 유발할 것으로 전망 <BR><BR>ㅇ 정부가 모든 몽골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겠다는 대통령 선거공약 시행과 2010년 10월부터 대폭 인상된 공무원들 급여는 인플레이션을 인상시킬 것이며, 물가의 인상이 임금 인상을 유발하는 순환현상이 나타난다면 인플레이션은 더욱 더 심해질 것임. <BR><BR>ㅇ 상기 사항을 종합해 볼 때 2011-12년간 몽골 평균 인플레이션이 15.1%에 달할 것으로 전망됨.<BR><BR>5. 환율<BR>ㅇ 몽골의 경제성장 전망에 대한 기대감에 따라 2010년 초부터 주재국 투그릭화는 달러대비 계속해서 평가절상중이며 앞으로도 상승이 지속될 전망임. 특히 2011-12년도에는 수출호조와 외국인의 광업분야 투자로 인해 대폭 평가절상될 것으로 전망됨<BR><BR>6. 외부적인 요인<BR>ㅇ 수출은 2008년 하반기의 부진에서 회복되고 있으며, 2009년초에 수출가격의 상승 및 몽골의 주요 무역대상국인 중국으로부터의 강력한 수요로 인해 무역적자 폭이 많이 감소함. 수출은 지속적인 외부 수요(주로 중국)와 구리와 석탄 국제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2011-12년도에도 호조를 이룰 것으로 전망됨. <BR><BR>ㅇ 중국은 몽골 수출의 거의 4/5를 차지하고 있으며, 만약 중국의 경제가 하락세로 접어든다면 몽골 수출에 어려움을 겪겠지만, 당분간 그러한 일은 없을 것으로 전망됨<BR><BR>- 수출은 Oyu Tolgoi 광산 프로젝트가 실제 가동이 되면 더욱 촉진될 전망이지만, 201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가능할 것으로 보임.<BR><BR>ㅇ 수입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국내수요가 상승함에 따라 향후 2년간 지속적으로 회복될 전망이며, Oyu Tolgoi 광산 및 다른 광산분야와 관련된 투자로 인해 수입이 늘어날 전망임. 다소간 무역적자가 예상되지만, 이는 광산분야의 외국인 투자로 인해 상쇄될 수 있을 것임.<BR><BR>7. 대외무역<BR><BR>ㅇ 수출의 증가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폭이 감소됨<BR>- 경상수지 적자는 1월-10월까지 2억6천만불로 2008년 7억5천만불에 비해 상당히 양호한 수준을 기록함<BR><BR>ㅇ 2010년도 1월-10월까지의 수출은 22.7억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53.1%증가하였으며, 수입은 2010년 1월-10월까지 25.3억불로 전년 동기대비 48.6%증가하였음. 수입증가의 주요원인은 광산분야 개발을 위한 연료와 장비의 도입에 기인함<BR><BR>ㅇ 구리는 현재 몽골의 가장 중요한 수출 품목으로 구리수출 금액은 8월까지 작년대비 83.3% 증가하였으며, 전체 몽골 수출의 28%를 차지하고 있으나 최근 석탄 수출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음. 석탄 수출은 8월까지 작년에 비해 172%가 증가해 전체 수출의 27%를 차지함. (작년의 경우 8월까지 석탄은 전체 수출의 16% 차지) .끝.<BR>(주몽골한국대사관)<BR><BR>출처 : 몽골투어앤비즈<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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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11년 몽골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BR>본격적인 몽골여행의 출발은 7월(11일-13일) 나담축제를 기준으로 삼지만, 요즘에는 5월부터 몽골여행이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1년 몽골여행과 관련해서 몇 가지 준비 및 안내를 해드립니다.<BR><BR><BR><BR>1. 몽골여행경비<BR><BR>세계적인 물가상승으로 인하여 몽골현지의 물가도 작년에 비하여 많이 올랐습니다. 매년 타지역 보다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면서 진행하는 몽골여행이지만, 올해는 항공료, 호텔비, 렌터카비, 유류대, 식대, 인건비 등이 많이 올랐습니다. 따라서, 가족여행자와 1-7인의 소수여행자들(몽골여행은 성인 8인부터 단체항공권을 적용함)의 부담이 조금더 늘어났습니다. 몽골은 가족여행지로 추천할 수 있지만 여행경비가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홉스골 호수와 고비사막 등 유명한 관광지로의 여행은 더욱더 부담스러워지고 있습니다.<BR><BR>결국, 몽골여행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단체여행상품에 참여하거나, 중급이하의 호텔 또는 게스트하우스(잘 선택하시면 몽골여행에 어려움이 없음)이용하거나, 여행시기를 성수기(7월초부터 8월중순)를 피하는 방법(5월, 6월, 9월), 최단기 여행기간의 이용(3박 4일-울란바타르와 그 주변지역을 둘러보는 코스이지만 몽골의 자연과 문화를 충분히 접할 수 있음)방법 등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BR><BR>2. 몽골봉사활동 <BR><BR>학교, 종교단체, 기업 등은 많은 단체가 봉사활동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봉사활동은 주로 나무심기, 빈민가 환경개선, 농촌봉사활동, 의료봉사활동 등 입니다. 2-3년 전에는 한국에서 몽골에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고 하면 무조건 찬성하고 특별한 문제없이 행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요즘에도 사전 준비를 잘한 대부분의 봉사활동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음). 하지만 요즘에는 몽골정부차원, 민간단체 등에서 한국에서 지원하는 중고물품의 위생문제, 의약품의 오남용, 봉사활동의 몽골법률상의 적합성 등을 거론하며 다소 엄격한 조사와 검토를 하기 때문에 봉사활동에 있어서 충분한 사전조사와 철저한 준비를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몽골은 한국보다는 후진국이지만,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며 몽골인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한 봉사활동이 무엇인지 고민한 후 출발하는 것이 좋습니다.<BR><BR>3. 몽골인의 한국인에 대한 인식<BR><BR>사실 한국인들도 외국인에 대한 거리감이 존재하듯이 몽골인들도 외국인에 대하여 어느 정도 경계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한국과 몽골의 역사, 1990년 수교이래 많은 인적, 물적 교류로 인한 친근감 등으로 인하여 다른 외국인보다 한국인을 좋게 대우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몽골에서는 몽골민족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몽골인의 주체성, 독립성, 우수성 등을 선전하며 외국인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몽골여행시 불필요하게 몽골인들과 접촉하거나, 가이드없이 혼자서 거리를 걷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BR><BR>4. 몽골여행의 특징<BR><BR>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여행지에서 일상의 모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오래간만에 떠난 해외여행을 즐기기 위해 많은 여행지에서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를 찾곤 합니다. 하지만 몽골여행은 기본적으로 몽골의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승마체험이 여행의 핵심내용입니다. 그리고, 장거리여행시에는 비슷한 자연경관이 반복되고 즐길거리가 많지 않습니다. 또한, 도로사정 등이 좋지 않아서 피곤한 여정이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강과 호수에서 수영, 보트타기 등을 즐길 수 있고, 밤하늘의 은하수 감상, 게르의 나무난로에서 장작타는 소리를 들으며 잠자기, 허르헉(몽골양고기찜요리)먹어보기, 바람소리만 들리는 초원에 누워서 맑은 하늘을 감상하면서 심신의 피로를 풀고 재충전의 기회로 삼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아주 훌륭한 몽골여행을 하신 겁니다. <BR><BR>5. 몽골여행시 필요물품<BR><BR>외국여행은 외국의 문화를 접하는 재미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현지의 음식을 맛보고, 공연을 감상하고, 현지인과 몸짓 대화도 시도해 보기도 하지요. 물론 몽골에서도 이러한 경험을 하시겠지만, 약간의 준비를 해서 가신다면 몽골여행은 더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먼저 여름이기는 하지만 밤에 특히, 게르에서 숙박시 다소 쌀쌀하기 때문에 보온성이 좋은 의류를 준비하시고, 라면, 햇반, 고추장을 준비하시면 식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모자, 썬글라스, 보습제, 물티쉬, 장갑 등은 울란바타르를 벗어나면 필요한 물품 중에 하나입니다. <BR><BR><BR>출처 : (주)몽골투어앤비즈<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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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center><BR><IMG border=0 hspace=0 src="http://cfs9.blog.daum.net/image/15/blog/2008/03/07/18/37/47d10cebe2bbf&filename=몽골지도.gif"><BR><BR>출처 : 달리는 말의 야후블로그</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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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style="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5px; PADDING-RIGHT: 5px; PADDING-TOP: 5px"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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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9대 명소를 어제 선정했다. 2년 전에 자연환경관광부, 몽골 관광협회에서 공동으로 '몽골 최고의 9대 명소'를 선정하기로 했었다. 2년 계속된 선발이 특이한 지형으로 구성된 아름다운 유적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귀중한 작품이란 2가지 구분으로 국민들의 의견, 자료를 접수했다고 한다. 총 113개의 후보 자료 중 37개는 명소, 76개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고 한다. 몽골 최고의 9개의 명소 및 작품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도록 한다. <BR><BR><STRONG>1. 몽골의 고비 /바양자그, 울란제렉, 헝거르걸, 헤르멘 차브/<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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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IMG src="http://www.kmnews.co.kr/site/_system/include/image.view.php?id=news_mongollia&uid=2149"></TD></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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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태흐라 불리는 몽골의 토종 조랑말</P>
<P style="TEXT-ALIGN: center"><IMG style="FLOAT: none; CLEAR: none; CURSOR: pointer" id=A_11592B514DACF8DE2C727E class=txc-image border=0 hspace=1 vspace=1 src="http://cfile209.uf.daum.net/image/11592B514DACF8DE2C727E" width=583 isset="true" actualwidth="583"></P>
<P></P>출처 : 푸른 하늘에 하얀 햇살<BR style="CLEAR: bo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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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LINE-HEIGHT: 160%; MARGIN: 0px 0px 7px"><B style="FONT-FAMILY: 돋움; LETTER-SPACING: -2px; COLOR: #6d6763; FONT-SIZE: 11pt">인감도장을 서명으로 대체,“본인서명 사실확인제”도입</B></DIV></TD></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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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bbs_contents_inbox><!-- 파이가 존재할경우 파이 뷰어를 인클루드 한다..(전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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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808080 size=2 face=굴림체> 1924년11월 몽골 인민공화국의 완전한 독립을 선포하면서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했던 몽골국(외몽고)는 1961년 유엔(UN)가입과, 1964년 중·몽 국경이 확정확정등을 거치면서 많은 정치적 변화를 겪게된다.<IMG border=0 hspace=5 vspace=5 align=right src="http://www.mongolschool.com/mongolia/images/poto-gov.jpg" width=287 height=163><BR><BR> 오랫동안의 사회주의 폐쇄 정책을 실시해 오면서 생긴 극심한 경제적 난제와 세계무대에서 가장 큰지지 기반이었던 러시아의 붕괴는 몽골국(외몽고)의 변화를 더욱 강하게 요구했다.</FONT>
<P style="LINE-HEIGHT: 160%" align=justify><FONT color=#808080 size=2 face=굴림체> 따라서 1988년 12월 제 5 차 공산당 (인민 혁명당) 총회에서 개혁 정책(시네츨를)과 민주화를 추구하기로 결정하였고 90년 7월 29일 최초로 민주 총선을 실시하여 국회(이흐 호랄)를 구성하였다. </FONT></P>
<P style="LINE-HEIGHT: 160%" align=justify><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 그 후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개선에 주력했으며, 한국과도 1990년 당시의 태통령인 노태우정권의 북방정책과 어우러져 대사급 수교를 맺게된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의 경제 개혁 조치에도 불구하고 생활 여건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으며, 국민들의 경제적 궁핍이 개혁 정책의 효과를 불신케 하자 , 92년 6월 말에 있었던 총선거에서 민족주의의 회복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공산당(인민혁명당)이 전체 의석중 92 %를 차지하여 압승을 거두었다. </FONT></P>
<P style="LINE-HEIGHT: 160%" align=justify><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 하지만 1993년 6월 국민 직선 대통령 투표에서 야당의 대표로 출마한 오치르바트가 공산당의 후보인 투데브를 누르고 선출되었고, 1996년 6월 30일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난 75년 동안 집권하였던 인민 혁명당을 국민들이 거부함으로써, 1924년 근대 국가를 수립 한 이래 처음으로 선거에 의하여 정권이 바뀌는 새로운 정치적 변화를 겪게 되었다. 총선거를 통해 야당 연합이 국회 의석의 3분의 2인 50석을 차지 하여, 국회 의장과 총리, 장, 차관이 새로 교체되며, 사회 전반에 급격 한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다. </FONT></P>
<P style="LINE-HEIGHT: 160%" align=justify><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 <IMG border=0 hspace=5 vspace=5 align=left src="http://www.mongolschool.com/mongolia/images/대통령.jpg" width=209 height=174>하지만 또다시 1997년 5월 18일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인민 혁명당 후보인 바그반디가 60%의 득표로 현직 오치르바트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되므로 몽골의 정치환경은 '균형과 변화'라는 대의전제 앞에 조금씩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BR><BR>더욱이 몽골은 국제적인 정세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위해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치중하고 있으며, 김대중대통령의 몽골방문에 이어 계속적인 정치,경제의 유대가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BR><BR><BR><BR>출처 : 몽골스쿨닷컴<BR></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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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2 face=굴림체> </FONT><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 몽골국(외몽고)는 소련과 중국 사이에 북위 41°35' - 52°09' 위치한 내륙국으로서, 면적이 한반도의 약 7배 (남한의 약16 배)인 약 1,566,500 km2 인데 남북거리가 1,263 km, 동서 거리가 2,405 km에 이른다. 국토 면적상 세계에서 17번째로 넓은 면적을 가지고있다.<IMG border=0 hspace=5 vspace=5 align=right src="http://www.mongolschool.com/mongolia/images/몽골-지도.jpg" width=153 height=95><BR><BR> 몽골국은 수도인 울란바타르가 해발 1,350 미터, 전체 평균해발이 1,580 미터인 고산지대로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알타이 산맥에 있는 해발 4,374 미터의 후이튼 산이고, 가장 낮은 곳은 해발 552미터의 후흐 호수이다.</FONT>
<P style="LINE-HEIGHT: 160%" align=justify><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 평균 고도가 약1,600 M의 고원 국가로 그중 40%가 산악 지대이며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형태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국토 중앙과 서쪽에 서울시 면적의 몇 배나 되는 아름다운 호수들이 몇 개가 있고, 그 가운데는 바닷물 성분과 같은 호수도 있다. 동남쪽에는 알타이 산맥이 있고, 서남쪽에는 고비사막이 있는데 국토의 21%에 이른다. <BR>국토의 71 %가 초원(스텝)이며, 8 %가 산림이다.<BR><BR> 몽골국은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로서 날씨의 변화가 심하고 건조하다. 긴 <겨울> (10월 ~ 이듬해 4월 )에 비해 <봄,여름,가을>이 모두 합하여 겨우 5개월밖에 안 된다. </FONT><FONT color=black size=2 face=굴림체><BR><BR> </FONT><FONT color=teal size=2 face=굴림체><B>[강수량]</B>: 연평균 100~250㎜</FONT><FONT color=black size=2 face=굴림체> </FONT><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울란바타르 - 233 mm / 서울의 약 20%) 연평균 강수량이 매우 적으면서도 그 중 65 ~ 78%가 여름에 집중적- (보통 15~20일 )으로 내림기 때문에 늘 건조한 상태이다.- 대신 250여일 정도 맑은하늘을 볼수있다.</FONT>
<P style="LINE-HEIGHT: 160%" align=justify><FONT color=teal size=2 face=굴림체><B> [기온]</B></FONT><FONT color=#002d5a size=2 face=굴림체> </FONT><FONT color=black size=2 face=굴림체>: </FONT><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심한 온도 변화로 수도 울란바타르의 경우 겨울에는 <영하 35 ~ 40℃>, 여름에는 <영상 25 ~ 30 ℃>로 연교차가 세계에서 가장 크다.</FONT></P>
<P style="LINE-HEIGHT: 160%" align=justify><FONT color=teal size=2 face=굴림체><B> [풍속]</B></FONT><FONT color=black size=2 face=굴림체> <B>:</B></FONT><FONT color=gray size=2 face=굴림체><B> </B>연간 평균풍속 < 2~3m /sec > <BR><BR><BR>출처 : 몽골스쿨닷컴</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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